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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판소리에서 임기응변과 변조의 의미-고수관의 경우를 중심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2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본 자료는 연세대학교 교양필수과목 [대학국어작문]수업 중간과제로 제출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던 리포트입니다. 많은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1. 판의 즉흥적 성격
2. 신위가 그려낸 고수관의 삶
3. 판소리에서 임기응변 변조의 의미
4. 맺음말


본문내용

일반적으로 판소리․서사무가․서사민요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구연․연창되는 예술의 경우, 작품을 온전하게 구연하기 위해서 명창은 오랜 기간을 스승에게 꾸준히 배우고, 배운 문서를 공들여 다듬어 청중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세련을 가해왔다. 명창의 학습방법을 조사할 때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증언은 ‘토굴에서 10년을 소리공부 하면서 살았다’거나, ‘쉬지 않고 열시간을 소리질렀다’, ‘소리공부를 하다가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도 않고 온몸이 부황이 나듯 부어올라 똥물을 먹었다’는 등, 得音을 위하여 악조건 아래에서 수련했다는 내용이 빠지지 않는다. 다소간의 과장은 감안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들 명창이 내고있는 곰삭은 소리의 정도를 고려한다면 ‘山水勝地를 찾아다니며 風餐露宿의 갖은 辛苦를 겪어가면서 수련했다’거나, ‘흥보가를 만 번쯤 불러봤다’거나, ‘3년 동안 춘향가를 각 장단별로 매일 두 차례씩 불렀다’는 명창들의 증언은 판소리라는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반복된 학습에 있다는 것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판소리는 광대가 스승에게서 전수 받은 작품을 부단한 학습을 통하여 온전히 전승시켜가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판소리가 조선 후기이래 민족예술의 주도적인 갈래가 되고, 광대가 판소리 공연을 통하여 일정 정도 명예와 부를 획득하는 수단이 되자, 판소리의 전승체계가 이전보다 더 확고해지고 법제화되었다. 이 같은 법제화의 한 증거로 세력 있는 판소리의 전승이 대개 가문단위로 이루어진 사실을 들 수 있다. 이른바 ‘自家의 法統’을 고집하는 전통이야말로 판소리가 강력하고도 배타적으로 세력화되었다는 점을 반영하는 표현이다. 송흥록이나 박유전 같은 명창이야말로 가문소리의 鼻祖가 되어, 그를 중심으로 하나의 집을 이룬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문하에서 소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스승이 가르치는 가문의 소리에 추호의 거스름도 없이 마치 ‘사진을 박듯이’ 답습해 불러야만 되었다. 이들은 법제화된 사설이나 발림까지도 엄정하게 배워서 가문의 소리를 지켜나갔다. 이 과정에서 광대의 탁월한 개인적 역량보다는 내려오는 소리를 고스란히 지켜서 답습하고 후대로 이어주는 방식이 훨씬 가치있는 일로 평가되었다.

참고 자료

『구비문학연구』7, 한국구비문학회, 1998, pp.273-286(『구비문학의 연행자와 연행양상』, 한국구비문학회 편, 1999.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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