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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조선후기 민간신앙

저작시기 2006.05 | 등록일 2006.05.22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조선후기 민간신앙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정서까지도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짧지만 알찬 내용이 담겨있어요.
목차를 참고해 주세요!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조선후기 민간 신앙
ⅰ) 도참신앙 - 비기와 미륵신앙
ⅱ) 미륵신앙
ⅲ) 도교의 민간신앙화

Ⅲ. 천주신앙

Ⅳ. 나가는 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들어가는 말
17세기를 전후하여 조선사회에서는 지배층과 농민층의 갈등이 날이 갈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었다. 농촌의 피폐화는 보다 심화되고 있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조선왕조가 보유하고 있던 봉건적 사회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되었다. 모순이 시정되지 않으면서 사회저변에는 위기의식이 만연되어 갔다. 이에 위정자들은 대동법 ․ 균역법 등을 시행하여 농민들의 불만을 해소시키려 하였으나, 근본적이 대책이 되지 못했다. 농민들의 의식이 깨우쳐지는 속에서 농민들은 국가에 대하여 보다 합리적인 관계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농민들은 나름대로 살 길을 강구하고 현실에 주체적으로 나서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조선후기의 모습은 분명 그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려는 움직임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 글에서는 위와 같은 조선후기의 다양한 변화 속에서, 민간신앙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궁극적인 목적은 민간신앙을 통해 당시 기층민들의 정신세계는 어떠하였는지, 그들에 정서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하는데 있다. 왜냐하면 민간신앙은 다른 어떠한 종교보다도 오랜 역사성을 가지며 대다수의 민중의 생활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고 따라서 기층문화의 성격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Ⅱ. 조선후기 민간 신앙
조선 양반 사회를 지배했던 이념과 규범은 유교였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이르면 유교 사상은 더 이상 사회 운영 원리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실생활과 너무나 동떨어진 관념적인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불교 역시 과거와 같은 구실을 할 수 없었다. 주로 풍수 도참설에 근거하여 왕조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은신, 피난처까지 예시하는 내용이었다. 그 중 가장 널리 유행 한 것은 <정감록>이었다. 정감록에는 이씨 왕조는 기운이 다해 이제 정씨 성을 가진 眞人이 나타나 새로운 왕조를 건설 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려 있었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편집부, 한국사 35(조선후기의 문화), 1998, 국사편찬위원회
김종수,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조선후기), 2002,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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