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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사]일본군 위안부(종군위안부)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2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발표수업을 위해 쓴 레폿입니다. 교수님이 까다로운 수업이라서 건성건성 할 수 없었죠.. 엄청 신경써서 쓴 레폿입니다. 그랬던 만큼.. 당연 결과는 좋았죠.. 많은 자료를 참고해서 정리한 만큼.. 교수님께 정리가 깔끔하고 잘되어 있다고 칭찬도 들었습니다. ^^

목차

없음

본문내용

보통 종군위안부라고 일컫는 일본군 위안부란 일제에 강제 징용되어 일본군의 성욕 해결의 대상이 된 한국․대만 및 일본 여성을 이른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의 시작으로부터 1945년 8월 태평양전쟁이 종결될 때까지 일제가 징용령을 공포하여 한국 남성을 강제로 연행해 간 것이 수십만 명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성들까지 끌고 간 것은 전쟁이 확대되면서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의 노동력 부족을 메우려고 동원된 여성 노동력인 근로정신대(勤勞挺身隊) 중 일부는 성적 착취를 위하여 군 위안부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들이 끌려가게 된 경위는 거의가 사기와 납치에 의해서였다. 전쟁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위안부 출신의 할머니들은 이렇게 증언한다. "우리 마을에서 일본인 앞잡이 노릇을 하던 50대의 아저씨가 나에게 공부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는 곳으로 보내 주겠다고 해서 따라 나섰다." "반장 부인이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한 집에서 적어도 딸 한 명씩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식모로 있던 집의 딸을 대신해서 어떤 일본인을 따라 나섰다." "집안이 가난해 너무 배가 고팠다. 어느 날 일본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며 여자를 모집한다기에 나는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이 모집에 응했다."
"친구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파출소 앞을 지나다가 순경에게 붙들려 그 길로 위안소에 강제로 끌려갔다." "학교 담임선생이 정신대에 나가라고 했다. 선생의 말이라면 반드시 복종하던 때였으므로 나는 선생이 시키는 대로 일본 도오야마현에 있는 공장으로 갔다. 그러나 공장 견학만 시킨 뒤 곧바로 남양군도의 위안소로 끌려갔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오랜 식민지 생활로 헐벗을 대로 헐벗은 농촌을 다니면서 배불리 먹게 해 주겠다,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등의 미끼를 내세워 어린 소녀들을 어렵지 않게 꼬여낸 것이다. 또 강제로 납치하여 위안소로 보냈던 것이다. 철면피하게도 교사까지도 동원하여 이 짓을 했던 것이다.

현지 여성들은 ‘전지후근복무대’라는 이름의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일본군에 의하면 ‘전지후근복무대’의 임무는 일본군 장교와 사병들에게 빨래를 해주고 부상병을 돌보며 병영을 청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대외 선전에 불과하였고 사실상 ‘전지후근복무대’는 양가집 여성들을 강박하여 일본군 장교와 사병들에게 성욕을 발산할 수 있도록 제공하여 그들(일본군)멋대로 유린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전지후근복부대’의 인원은 대부분 현지에서 강제로 징발되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남성들과 같이 노동대로 선발된 후 그 중에 예쁜 여성들은 별도로 선발되어 담배 잎의 벌레 따기, 손질하기 등 비교적 가벼운 일을 하면서 주로 군인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성노예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피해 여성중 한 명인 진금옥씨는 ‘전지후근복무대’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참고 자료

2002년 국외거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실태조사 여성부 권익 기획과 2002
“그 말을 어디다 다 할꼬”일본군 위안부 증언자료집 여성부 권익 기획과 2002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국제사회의 동향 여성부 2003
종군위안부 도서출판 밀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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