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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근세사]명대의 대외관계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2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명대의 대외관계 중 동아시아 3국에 관한 것입니다.(역사교육)
조공 책봉 관계와 일명 사대교린이라 불리는 외교정책, 그리고 3국이 연루된 전쟁(임진왜란)까지. 열심히 조사한 것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명대 외교정책
(1) 조공과 해금정책
(2) 조공관계-한중관계를 중심으로
3. 명초 동아시아 3국의 관계
(1) 倭寇
(2) 일본의 명에 대한 조공무역
(3) 고려, 조선과의 관계
4. 임진왜란-동아시아 3국의 전쟁
(1) 명군의 참전목적
(2) 출병과 전투 과정
5. 맺음말

본문내용

서양諸國이 19세기에 한국과 접촉하면서 알게 된 것은 조선이란 나라가 서양개념으로서의 ‘주권’국가도 아니고, 중국의 지배를 받는 예속국가도 아니라는 것이다. 韓中關係에서의 이 한국의 특수한 지위는 유교적 국제질서인 朝貢關係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중조공관계는 4세기 후에 성립되어 그 후 7세기까지의 사이에 그 윤곽을 갖추어 明淸代에 이르러서 제도의 기초를 이루었다.
유교의 세계관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자연적, 윤리적 질서에 따른 것이며, 중국은 모든 문화, 덕 그리고 예의 원천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중국과 가까운 나라일수록 이와 같은 자연적 유교질서를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중국으로부터 이와 같은 문화가 주변지역으로 확대되어갔다. 그래서 중국은 유교질서와 위배되는 사상은 옳지 않으며 그들의 질서를 파괴한다고 간주했다. 즉 중국 중심의 자연적 세계 질서관과 우월한 문화와 유교사상으로 중국은 세계질서의 중심국으로서 기타 약소국들로 하여금 그의 屬邦이 되게 했다. 서양으로 볼 때, 한중외교관계인 조공관계는 불평등하고 계급적이었다. 그러나 유교적 국제질서는 가족주의 원칙에 의거하여 세계를 하나의 확대된 가족으로 보았다. 그래서 한중관계는 형제의 관계, 父子의 관계, 군신의 관계였으며, 대국인 중국은 소국인 한국을 가르치고, 훈계하고, 인자하게 대하고, 한국은 대국인 중국을 따르고 존경하고, 중국에 복종하고 배신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그러므로 이 한중의 ‘事大의 禮’의 관계인 조공관계는 자연적인 국제질서이며, 이론적으로 삼강오륜의 가족질서에 있어서의 관계를 뜻하며, 중국은 아버지와 형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중국은 아버지의 나라로서 필요하지 않는 한 한국에 간섭하거나 한국을 직접 지배하려 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한국은 공식적인 예절 외에는,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 한, 자주독립을 유지하였으며, 중국도 이 조공관계의 ‘사대의 예’로서 만족했다.
이와 같은 조공관계는 제도화됨에 따라 명청시대에는 조공 이외의 관계란 원칙적으로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한중관계를 전형적 조공관계라고 부르며, 그것은 매우 ‘儀禮化’되어 본질적으로는 정치적 관계였지만 ‘사대의 예’의 형식적, 의례적 외교관계였다. 또한 조공관계는 중국 중심의 중국주도권의 관계였으며, 중국 문화의 우위와 세력을 뜻하는 국제질서이기도 했다.

참고 자료

董德模, 『朝鮮初의 國際關係』, 博英社 , 1990
박원호, 『明初朝鮮關係史硏究』, 一潮閣, 2002
申採湜, 『東洋史槪論』, 三英社, 1993
한명기, 「임진왜란과 명나라 군대」, 『역사비평』, 역사문제연구소,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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