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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관계]명의 대외관계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1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명의 대외관계를 영락제부터 강조된 조공관계를 중심으로 조사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영락제의 대외 팽창 정책
3. 정화의 남해 원정
1)배경 2)규모
3)경과 4)영향과 의의
4. 조선과의 관계
5. 일본과의 관계
6.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원나라 말기에 백련교의 난이 일어나자 주원장은 원을 몰아내고 명(1368~1644)을 세웠다. 그는 재상제를 폐지하고 행정과 사법, 군사권을 모두 장악하여 황제권을 강화하였다.
홍무제는 쇄국 정책을 썼으나 영락제는 대외 팽창 정책을 폈다. 그는 몽골 고원과 만주, 베트남을 정복하고 일본과의 협조 아래 동남 해안 지방을 침략하던 왜구도 진정시켰다. 주변 여러 나라에는 사신을 파견하여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조공 질서를 확립하였다.
조공체제는 유교이념에 근거한 중국 중심의 문화론-화이질서론-에 기반하고 있지만, 실제 작동은 중국의 정치군사적 힘이 있었다. 가장 전형적인 조공관계로 평가되고 있는 조선과 명의 관계라든지, 환관 정화에게 남해 원정을 명한 결과 동남아시아의 각국과 조공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영락제의 대외 팽창 정책의 중심이었던 정화의 남해 원정과 명의 조선 및 일본에 대한 대외 관계를 조공 질서의 확립의 측면에서 알아보겠다.


2. 영락제의 대외 팽창 정책

영락제는 극심한 절약을 통해 내정에만 힘써왔던 태조와는 달리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폈다. 영락 원년에 북경천도를 계획하고 중국황제로는 유례없이 전후 5차에 걸쳐 몽골 지방을 친히 원정하여 동방의 타타르부와 서방의 오이라트부를 정복하는데 성공을 거두는 등 영락제는 대외발전을 통해 정난의 변에 의한 불신을 극복하고, 북경정권의 정통성을 수립하여 군주독재체제를 구축하여 애썼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역사적으로 해상무역이 발달했던 당, 송을 잇는 명이 해상무역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1368년 명을 세운 홍무제는 국내의 반명 세력과 왜국의 결합을 경계하여 해금령(海禁令)을 내리고 사무역을 엄금함과 동시에, 명에 대한 군신 관계를 전제로 한 국가 간의 조공 무역만을 인정하였는데, 1383년에 처음으로 시암, 참파, 캄보디아 등에 감합부를 급여하였고, 이후에는 그것이 조공 각국에 미치게 되었다. 홍무제 시대에 소극적이었던 명의 대외 정책은 영락제의 즉위와 함께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영락제는 국내 지배 체제의 안정을 배경으로 정화의 해상원정을 통해 당시의 남해 무역을 중국을 축으로 하는 조공 무역 체제로 편성하고자 하였다.
조공은 중국의 왕도 사상에서 나온 대외 정책의 한 형식이며, 국가 간 공식적인 물품 교환의 형식을 띤 관무역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무역뿐 아니라 문화 교류도 이루어졌다. 청대에는 조선·류큐·베트남·시암·버마 등 동남아시아 각국과 티베트·묘족(苗族) 등 서북 지방의 여러 부족과도 조공 무역을 행하였다. 동·서양과의 교류도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하여 왔으나, 청 국력의 약화로 그 체제는 점차 무너지게 되었다.

참고 자료

변태섭, 『韓國史通論』, 삼영사, 2003
신승하, 『중국사』(하), 대한교과서, 2005
신채식, 『東洋史槪論』, 삼영사, 2000
정용화, 「조선의 조공체제 인식과 활용」,『한국정치외교사논총』 2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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