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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삼국사기 초기 기사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1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발표수업을 위해 쓴 레폿입니다. 교수님이 까다로운 수업이라서 건성건성 할 수 없었죠.. 엄청 신경써서 쓴 레폿입니다. 그랬던 만큼.. 당연 결과는 좋았죠.. 많은 자료를 참고해서 정리한 만큼.. 교수님께 정리가 깔끔하고 잘되어 있다고 칭찬도 들었습니다. ^^
정말 후회 하시지 않을 만한 자료 입니다.

목차

1. 『삼국사기』에 대한 신뢰와 불신
『삼국사기』편찬의 시대적 배경
『삼국사기』에 대한 신뢰와 불신
2.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대한 비판
2.1. 삼한과 삼국
2.2. 고대국가 성립과 정복사업
결론
■ 참고 ■

본문내용

1. 『삼국사기』에 대한 신뢰와 불신

『삼국사기』편찬의 시대적 배경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책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 인종 23년(1145)에 편찬된 『삼국사기(三國史記)』이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의 명을 받은 김부식에 의해 편찬되었다. 따라서 『삼국사기』에 담겨진 역사의식은 김부식을 대표로 하는 고려 중기의 역사인식을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는 묘청난으로 분열된 민심을 재수습하여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고 대륙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금나라와의 관계에서 유연한 외교술로 안정을 찾으려는 목적에서 편찬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힘의 논리로 중국과 겨루다가 패망한 고구려의 전통보다는, 유연한 외교술과 충의의 도덕정신으로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신라의 역사전통을 높이 평가하는 시각에서 삼국의 역사를 정리하여 쓴 것이라고 하겠다.
결국 인종과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세력은 계속되는 사회변동과 정치적 변란에 대응하여 지배질서를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고, 그러한 이유로 일종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하였던 것이다. 『삼국사기』는 이와 같은 필요성에 의해 안으로는 왕권을 옹호하고 밖으로는 나라를 지켜주는 정신적 구실을 하고자 편찬되었던 것이다.

『삼국사기』에 대한 신뢰와 불신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삼국은 모두 서기전 1세기경에 건국을 했다. 고구려는 서기전 37년에, 백제는 서기전 16년에, 신라는 서기전 57년에 각각 건국을 하였다.
오늘날의 사학계의 정설에 따르면, 이러한 연대는 정확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삼국이 고대국가로 성립한 것은 그보다 상당히 늦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기록상 가장 앞서 있는 신라의 건국연대조차 『삼국사기』의 편자인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의 조작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김부식이 중국 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대주의자였고, 아울러 신라 중심의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한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다. 사실 역사서의 경우 그 편찬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편찬자에 따라 역사의 평가 내용이 바뀌는 사례는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만 예를 들더라도 사마천은 자신이 한나라로부터 괄시받은 것에 응수하여 한 무제(武帝)를 평가절하하고 있다. 또 『조선왕조실록』가운데 방대한 양을 차지하는 『세종실록』의 경우에도 그 편찬자인 양성지(梁誠之, 1414-82)의 입장이 너무나도 폭넓게 관철되고 있다. 양성지의 경우 다른 많은 중요한 상소문은 줄여서 실록에 싣고 있는 반면, 자신의 상소문은 똑같은 내용이라도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전문 그대로 싣고 있다.

참고 자료

박현, 「삼국은 언제 고대국가가 되었나」,『한국사 산책』, 백사서당, 1996.
이덕일, 「삼국 초기 역사는 왜 사라졌는가」,『살아있는 한국사』, 휴머니스트, 2003.
이도남, 「삼국사기, 그 긍정론과 부정론」,『한국인의 역사의식』, 청년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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