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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영조와 정조

저작시기 2005.12 |등록일 2006.05.1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영조와 정조에 대해 조사한 레포트 입니다.

목차

1.영조
생애
을사처분
정미환국
무신란
영조의 탕평정국
그 밖의 개혁 정치

2. 정조
생애
문화정치의 추진
탕평책의 계승
중인문화의 장려와 문예부흥
그 밖의 개혁정치
사도세자에 대한 예우

본문내용

을사처분
영조 집권 초년 이의연이 경종 집권 당시 연잉군의 세제 책봉을 주장하다 처벌된 대신들을 시누언해야 한다는 성급한 주장을 펴다가 소론 측의 탄핵을 받아 오히려 유배되고 말았다. 신임사화와 임인 옥사는 영조의 세제 책봉과 대리청정과 관련하여 충역론을 근거로 일어났던 것이므로 이것을 바꿔야 영조의 왕권의 정통성도 설 수 있고 노론의 정치적 정당성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론은 세제책봉과 대리청정은 대비 김씨의 교지를 받들여 한 것이고, 경종이 병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므로 역이 아니라 충이라고 주장하며 임인옥사의 장본인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린다.
이에 영조는 소론의 영수 김일경, 남인의 목호룡 등 신임옥사를 일으킨 대신들을 숙청한 다음 1725년에는 김일경이 노론 4대신을 역적으로 몰아 상소 할 때에 이에 동조한 이진유 등 6명을 귀양 보냈다. 그리고 노론 측의 소론에 대한 잇따른 논핵에 의거해 영의정 이광좌, 우의정 조태억등 소론 4대신을 제거하고 민진원, 정호 등의 노론 인사들을 등용하여 노론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이것이 ‘을사처분’이다.

정미환국
을사처분으로 노론이 정권을 잡게 되자 신임옥사 때 처단된 노론4대신과 그 밖의 관련자들에 대한 신원 문제가 다시 논의 되어 4대신이 복관되고 시호를 받았다. 하지만 노론 측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정호, 민진원 등이 임인옥사에 대한 보복을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영조의 왕권과 노론 집권의 정당성과 관련하여 경종 때 만들어 놓았던 충역론을 바로 잡아야 한다며 임인옥사의 옥안을 번안하려 하였다. 임인옥사가 반역으로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충으로 바꾸어 성리학적 명분론을 제공하려 한 것이었다.

참고 자료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 왕조 실록』 들녘 1996
박광용 『영조와 정조의 나라』 푸른역사 1998
고석규 『19세기 조선의 향촌사회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 2』 동방미디어 2000
유봉학 『정조대왕의 꿈』 신구문화사 2001
박현모 『정치가 정조』 푸른역사 2001
이태진 『조선시대 정치사의 재조명』 태학사 2003
한국역사 연구회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2』 청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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