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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요서 경략설의 검토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1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2페이지 | 가격 1,100원

소개글

발표수업을 위해 쓴 레폿입니다. 교수님이 까다로운 수업이라서 건성건성 할 수 없었죠.. 엄청 신경써서 쓴 레폿입니다. 그랬던 만큼.. 당연 결과는 좋았죠.. 많은 자료를 참고해서 정리한 만큼.. 교수님께 정리가 깔끔하고 잘되어 있다고 칭찬도 들었습니다. ^^

목차

1. 요서경략설(遼西經略說)의 개요
2. 관련기사 검토
3. 믿을 수 없다는 주장
4. 부정하기 어렵다는 주장
결론 - 해상왕국 백제, 올바른 복원이 필요

본문내용

1. 요서경략설(遼西經略說)의 개요
433년 나제동맹이 성립된 후 백제, 신라와 고구려 사이에는 때때로 국경분쟁이 일기도 했으나 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372년 이래 중국 남조와 계속 국교를 유지해오던 백제가 472년 북위에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를 공격할 것을 요청한 외교문서를 보낸 것이 고구려의 신경을 크게 자극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475년 장수왕의 백제 정벌이 있게 되고, 그 결과 개로왕은 전사하고 수도는 함락되었다. 이에 백제는 웅진(공주)으로 천도하여 국가 재건을 꾀하였는데, 바로 이같은 때에 백제가 북위의 침략군을 크게 격파하였다는 기사가 중국 사서에 나타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자치통감』권 136 제기(祭紀) 세조(世祖) 영명(永明) 6년(488) 조에는 북위의 군대가 백제를 치다가 도리어 패하였다고 하며, 『남제서』권 58 백제조에는 이즈음(488년 혹은 490) 북위가 기병 수십만을 동원하여 백제 국경지방을 치다가 동성왕이 보낸 장군 사법명(沙法名), 찬수류(贊首流),해례곤(解禮昆), 목간나(木干那)등에 의해 크게 격파당하였다고 되어 있다. 나아가 495년에는 동성왕이 490년의 북위와의 전쟁에서 군공을 세운 사법명 등 4명의 장군에게 가수(假受)한 ‘왕’ 혹은 ‘후(候)’의 작위와 장군호를 남제가 정식 승인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그런데 당시 북위는 수군이 약했을 때이므로 해상으로 백제로 쳐들어왔을 리는 없고 육로로 왔을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이 전쟁은 백제가 북중국의 어느 곳을 점령하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소위 백제의 요서경략설(遼西經略說)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먼저 백제의 요서경략설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사료를 몇가지 살펴보자.

참고 자료

장동익 외 공저,『한국사강론』, 영운출판사, 1997.
박현,「백제는 과연 중국에 식민지를 두었나」,『한국사산책』,백산서당,1996.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분과,「백제영토, 중국대륙에도 있었나」,『한국고대사산책』,역사비평사,
2002.
http://mahan.wonkwang.ac.kr/nonmun/03/96305019.htm(논문「백제요서경약설에 대한 일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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