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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영천청제비의 설명과 비문해석

저작시기 2005.05 |등록일 2006.05.1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영천의 청제비에 대한 설명과 비문해석

목차

1.청제비의 발견
2.청제비란?
3.청제비의 형태와특징
4.비문의 내용과 해석
5.청제비의 고고학적 의미
6.문화재의 관리상태

본문내용

1. 청제비의 발견
청제비는 한국일보사의 주관으로 신라삼산에 대한 학술조사를 진행하던 신라삼산학술조사단에 의해 1968년 12월 세상에 그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영천의 읍지인 『영양지(永陽誌)』에 "당나라 정관(貞觀)때의 기사비가 있다."고 했고, 『영천전지(永川全誌)』에도 "당태종이 신라를 쳤을 때 위징이 청천제를 막았는데 후인이 비를 세워 그공을 기록했다."는 부분이 있다.
이로 보아 부정확하긴 하지만 청제비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알려졌던 듯하고 또 지역 주민들 역시 이런 비가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이때 비로소 학계에 보고되고 매스컴을 통해 알려졌다.

2. 청제비란?
체악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모아 관개에 이용하려고 두 야산의 허리를 이어 만든 청못은 제방의 길이가 약 240cm, 그 높이는 12.5m에 둘레는 2km 쯤 되는 큰 연못으로, 이를 막아서 농업에 이용하려고 둑을 쌓아 청제를 만들었는데 이때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비석이 청제비이다. 청제비는 못의 서북편 얕은 산기슭에 있다.

3. 청제비의 형태와 특징
이 비석은 화강암의 자연판석으로 장방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높이 114sm, 폭 94cm, 두께 16cm로 비면에는 행간이나 윤곽선은 없고 양면을 가공하여 각자해 놓았는데 그 양면의 비문은 각기 다른 연대와 내용을 담고있다.
한면은 병진년 (법흥왕 23년,536년으로 추정됨)의 간지가 적혀있는 것으로 청제를 처음 축조한 기념으로 새긴 축제기라고 할 성질의 것이라면, 다른면은 정원십사년(원성왕 14년, 798년으로 추정됨)의 절대연대가 적혀있는 것으로 청제의 일부 무너진 둑을 다시 수리한 사실이 적혀있는 수치기라고 할수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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