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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이해]문화유적지 답사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1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신숙주 선생의 묘와 정문부 장군의 묘를 직접 다녀와서 사진찍고 감상문 작성
A+ 레포트입니다^^

목차

<신숙주 선생의 묘>
■ 신숙주 선생에 관하여
■ 신숙주 선생에 관한 야화
● 숙주나물의 유래
● 신숙주의 벗이 된 청의동자
● 신숙주의 신변을 늘 돌봐준 청의동자
■ 신숙주 선생 묘에 대하여
■ 신숙주 선생 묘 사진

<정문부 장군의 묘>
■ 정문부 장군에 관하여
■ 정문부 장군 묘에 대하여
■ 정문부 장군 묘 사진

본문내용

■ 신숙주 선생에 관하여
신숙주는 본관이 고령(高靈)으로, 아버지는 공조좌참판(工曹左參判)을 지낸 장(檣)이며 어머니는 지성주사(知成州事) 정유(鄭有)의 따님이다. 자는 범옹(泛翁), 호는 희현당(希賢堂) 또는 보한재(保閑齋, 이하 신숙주를 보한재 선생 또는 공이라 함), 시호(諡號)는 문충공(文忠公)이다. 1417년(태종 17) 6월 13일(丁酉)에 태어난 보한재 선생은 태어나 자라면서부터 여느 어린이들과 달랐고, 자라서 공부를 시작하자 모든 경서와 역사책을 한번 읽으면 기억할 정도였으며 글재주가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세종대왕은 유학자들이 훈고(訓誥)만 존중하고 폭넓게 공부하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1438년(세종 20)에 처음으로 시(詩)와 부(賦)로 시험을 치르는 진사시험을 실시하였다. 보한재 선생은 서울에서 단번에 으뜸을 차지했으며 같은 해에 생원시험에도 합격을 했다. 또한 이듬해인 1439년에는 문과(文科)에 합격했으며 전시(殿試)에서는 을과(모두 일곱명)로 급제하였다. 보한재 선생은 조선 시대 500년 동안에 가장 뛰어난 어학자 중 한 명이었다. 선생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세종대왕이 기획했던 언어정책을 충실히 보필하였으며 세종대왕이 1443년 (세종 25)에 창제한 훈민정음의 해설서 집필에 참여하여 다른 일곱 학자와 함께 1446년(세종 28) 9월에 {훈민정음해례본} 편찬을 완료하였다. 1445년(세종 27)에는 권 제, 정인지, 안 지 등이 지어 올린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내용을 다른 학자들과 함께 1447년(세종 29)까지에 걸쳐 보완하였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의 전승한자음을 정리하여 표준 한자음을 설정하려는 목적에서 편찬한 『동국정운』이 1447년(세종29)에 6권으로 완료되고 1448년(세종30) 출판되었는데 이때 선생의 나이는 32세였으며 서문까지 쓴 것으로 보면, 이 편찬 사업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보한재집 부록에 수록되어 있는 문충공행장을 통해 선생이 여러 나라 그 중에서도 특히, 한어(중국어), 왜어(일본어)에 능통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생은 이러한 능력을 통해 한글 창제후 세종이 계획하고 있던 표준용 우리나라 한자음과 표준학습용 중국 본토 한자음을, 모두 새 표음문자인 한글로 표기하도록 하는 사업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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