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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원나라의 대외관계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1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900원

소개글

원나라의 대외 관계에 대한 레포트 입니다. 수업시간 발표가 있었기에 나름 열심히 쓴 것이죠.. ^^ 잘 정리 하였다고 칭찬을 들었더랬죠.. ㅋㅋ

목차

1. 서론

2. 본론
1) 원과 남송과의 관계
(1) 원, 남송관계의 악화
(2) 남송을 애산(厓山)에서 멸망시키다.
2) 남해무역의 확대와 호상(豪商)과 포수경(蒲壽庚)
3) 원과 고려의 관계
4) 원과 일본과의 관계(일본원정의 실패)
5) 동서 교통로의 발달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13세기 초, 칭기즈칸에 의해 구축된 몽골제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북방초원에 정치적 기지를 두고 대륙남방의 농경지대를 그 속령으로 삼아 지배한 유목국가로, 속령으로부터의 가혹한 수탁과 부정기적인 약탈로써 경제적 욕구를 충족하였다. 그러나 유목제왕과 그를 둘러싼 유목 봉건 영주층, 또는 유목민 지배층과 농경민 피지배층 사이에 정치적, 경제적 모순이 발생하여 제국은 끊임없이 동요되었다. 이와 같이 유목제국에 잠재된 근본적인 결함을 극복하려고 유목과 농경이 공존할 수 있는 중간의 아건조지대(亞乾燥地帶)에 새로운 정치적 기지를 찾아서 강대하고 집권적인 제국을 영위하려 한 것이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이었다.
1260년에 몽고제국의 칸으로 등극한 쿠빌라이는 남송을 정복하여 중국을 통일하고자 했다. 1267년부터 몽고군은 양쯔강 하류로 진입하는 길목에 위치한 요새도시 양양을 집중공격 했으나 쉽게 함락시키지 못했다. 여러 차례 양양성을 공격하다 실패를 거듭한 몽고군은 1272년에 아라비아 기술자들이 만든 회회포를 사용하여 양양을 함락하였다. 회회포는 사람의 힘을 이용한 투석기와는 달리 추의 반발력을 이용한 서양식 투석기였다. 몽고군은 회회포와 여러 가지 혁신적인 공성무기를 이용한 끝에 1279년 광둥의 애산 전투에서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다시 통일하였다. 이 나라가 바로 쿠빌라이가 세운 원나라이다.
아래에서는 이렇게 세워진 원나라가 주변국과 어떠한 관계를 이루었는지 알아보겠다.

2. 본론
1) 원과 남송과의 관계
(1) 원, 남송관계의 악화
남송을 토벌하여 동아시아의 주요 지역을 병합하고자 한 헌종 뭉케 카한의 의욕은 1257년 친히 진두에 서서 군대를 진군시킨 사실에서도 분명하다. 당시 ‘한지대총독(漢地大總督)’
의 지위에 잇던 쿠빌라이도 그 임무를 맡아 당연히 여기에 참가하여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역시 그러한 의욕에 동감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헌종의 죽음을 계기로 격동하는 몽골제국의 정세 속에서 그가 일방적으로 제5대 카한의 계승자임을 선언하고 즉위한 시점에서는, 남송에 대한 쿠빌라이의 태도는 확실히 변화되어 있었다. 1260년 즉위와 동시에 그는 가까운 신하인 학경을 국신사(國信使)로 삼아 남송에 파견하여 평화조약의 체결을 요청하였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해서는, 때마침 몽골리아 본국에서 전개되고 있던 아릭부케와의 항쟁 때문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1년 전 악주성을 포위공격한 경험에 비추어 광대한 남송영역의 공략에 신중을 기한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 자료

- 周蕂吉之 외, <<송원사>>
- 크리스 피어스, <<전쟁으로 보는 중국사>>, 수막새, 2005
- 신채식, <<동양사개론>>, 삼영사, 2000
- 신승하, <<중국사>>, 대한교과서,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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