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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중세 봉건사회의 성립과 해체

저작시기 2005.09 |등록일 2006.05.1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2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중세유럽의 봉건사회는 민족이동과 로마제국의 몰락 후의 정치적․사회경제적 상황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국가공권의 해제와 사회의 전반적인 농촌화를 배경으로 성립하였으며 정치적으로는 지방분권적인 사회요, 사회경제적으로는 농노제를 바탕으로 한 농촌사회였다.
여기서 이러한 봉건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봉건제도와 장원제도에 대해서 알아보고 또 봉건사회가 어떻게 해체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기로 하자.

목차

1. 머리말

2. 봉건제도
(1) 기원과 성립과정
(2) 주종제도
(3) 봉건적 의무
(4) 봉건적 정치
(5) 기사도

3. 장원제도
(1) 장원의 구조
(2) 농노제와 부역
(3) 영주권
(4) 공동체적 성격

4. 봉건사회의 붕괴
(1) 경제적 위축
(2) 장원제도의 붕괴

본문내용

1. 머리말
중세유럽의 봉건사회는 민족이동과 로마제국의 몰락 후의 정치적․사회경제적 상황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국가공권의 해제와 사회의 전반적인 농촌화를 배경으로 성립하였으며 정치적으로는 지방분권적인 사회요, 사회경제적으로는 농노제를 바탕으로 한 농촌사회였다.
여기서 이러한 봉건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봉건제도와 장원제도에 대해서 알아보고 또 봉건사회가 어떻게 해체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기로 하자.

2. 봉건제도
(1) 기원과 성립과정
봉건제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의 기원은 민족이동 전의 게르만사회나 로마사회에서 다 같이 찾아볼 수 것이다. 이를테면 주종제도의 한 측면인 개인적 보호관계는 로마사회의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인 클리엔테이지에서 볼 수 있으며 이보다 더 주종제도와 유사한 것은 게르만 사회에서의 종사제였다.
봉토의 한 중요한 속성인 토지의 불완전 소유, 즉 완전한 소유가 아니라 지대를 비롯한 일정한 의무수행을 조건으로 토지의 用益權을 갖는 사례는 로마사회의 프레카리움을 들 수 있으며, 이는 또한 민족이동 수의 프랑크왕국에서의 恩貸地制度와 관련을 갖고 있다. 토지에 결박된 예속적인 소작농의 출현은 이미 로마제정 후반기의 콜로누스에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여러 요소가 연관을 맺으며 결합하여 유럽 중세에 독특한 봉건제도를 형성하게 된 것은 역시 민족이동 후의 정치적․사회경제적 상황의 결과였다. 봉건제도의 성립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로는 프랑크왕국의 궁재로서 사라센의 침입을 격퇴한 찰스 마르텔이다. 마르텔은 사라센격퇴를 위하여 종전의 보병 대신 대규모의 기병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기병의 경우 밀의 보유와 사육 등 비용이 들었다. 그리하여 마르텔은 유능한 전사를 모집하여 그들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게 하고 기병으로서 종군하는 보상으로 은대지를 수여하였다. 그러나 왕령만으로써는 토지가 부족하여 교회의 토지로 나머지를 충당하였다. 교회의 토지는 완전한 소유권의 이전이 불가능하였고, 용익권만이 허용되는 은대지로 수여되는 것이 관례였다. 전사가 사망하면 그 토지는 응당 교회로 돌아가야 하지만, 마르텔은 이를 다시 유능한 전사에게 동일한 조건으로 수여하였다. 이리하여 주종제도와 은대지제도가 결합하게 되고, 9세기에 가서 은대지라는 말 대신에 feudum, 즉 봉토하는 말이 널리 사용되었다.

참고 자료

◎민석홍, 서양사개론, 도서출판 삼영사, 1984
◎편자 배영수, 서양사강의, 도서출판 한울, 1992
◎브라이언 타이어니/시드니 페이터 공저, 이연규 역, 서양 중세사, 집문당,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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