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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치]일본 자민당의 장기집권 배경과 사회적 의미 및 영향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1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4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일본 내에서의 자민당의 사회적 의미 및 영향 , 그리고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배경과 그 의의에 대해서 고찰해보자.

목차

Ⅰ.서론

Ⅱ. 본론

1. 시대별 자민당 현황

1) 1960년대 : 1.5 정당제 또는 일당우위시스템의 형성

2) 1970년대 : 새로운 정당시스템의 모색과 기존정당의 정체기

3) 1980년대 : 유권자의 보수화(=보수정당지지율 상승)와 정당지지의 유동화

III. 55년체제 장기지속(=자민당의 장기집권) 배경

1. 자민당의 이익유도시스템의 성공

2. 자민당의 수권능력 인정

3. 대체야당세력의 부재

4. 유권자의 안정 지향적 정치성향

V. 55년체제의 붕괴

1. 자민당의 분열

2. 비자민연립내각 구성의 성공

3. 사회당의 몰락

VI. 결론

본문내용

Ⅰ.서론

자민당의 장기집권 현상은 일본 경제의 성공적인 실적과 더불어 현대 일본 연구중 가장 중심적인 과제가 되어 왔다. 전쟁의 폐허에서 현재의 일본이 있기까지 자민당 정부가 끼친 영향력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및 사회 전반에 걸쳐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경이적인 경제발전과 풍부한 사회의 도래, 효율적인 국가안보와 평화의 정착, 민주주의정치제도의 제도화 등이 자민당 정부의 업적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장기간에 걸친 일당지배의 폐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과정으로부터 야당지지 세력의 반영구적 소외, 정책 결정과 엘리트 충원에 있어서의 구조적 폐쇄성, 정치부패의 만연과 일상화, 지도층의 나태와 변화에 대한 적응력의 부족 등은 일본 사회가 해결해야 할 주요한 과제들로 지적되고 있다. 물론 자민당 정부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권의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6년, 79년, 83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과반수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여 보수계 무소속 의원을 영입하거나 신자유클럽과 연합하여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으며, 득표율에 있어서도 1963년 선거 이후 한번도 50%을 넘지 못했다.
특히, 1993년 7월 중의원 총선에서 과반수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여 38년만에 일당에 의한 장기집권에 종지부를 찍고 비자민 연립정권의 시대를 열었다.
선거제도와 정치자금 등을 중심으로 한 정치개혁법안을 통과시킨 호소카와 모리히토(細川護熙) 연립정권은 호소카와의 사임으로 신생당, 일본신당, 공명당, 민사당으로 구성된 소수파 연립정권인 하타 쓰토무(羽田孜)내각에 의해 대치되었다. 하지만 1994년 6월에는 제1야당인 자민당과 사회당의 좌우합작에 사키가케 개혁신당이 참여하게 되자 하타 내각은 2개월도 못되어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내각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고 자민당은 11개월만에 다시 비록 연립정권의 형태지만 집권여당에 의한 세 개의 내각이 들어섰던 것이다. 무라야마 내각은 1년 반만에 다시 1996년 1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내각이 바뀜으로써 자민당은 단독으로 정권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10월에 있었던 중의원선거에서 연립정권 자민당은 2백 39석을 차지, 이 선거 역시, 과반수에는 못 미치지만 이전의 선거에서보다 29석이나 많은 수의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결국, 야당으로의 전락, 연립정권을 통한 여당으로의 복귀의 과정상 자민당은 여당으로서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었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 국민의 정치에 대한 회의와 무관심이 팽배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정치에 대한 무관심의 충분조건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도덕성의 추락, 부패의 만연, 관료의 경직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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