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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회보장의 역사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1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사회보장의 역사

목차

1. 봉건사회의 붕괴와 구빈법 체제
2. 사회보험제도의 성립

본문내용

1. 봉건사회의 붕괴와 구빈법 체제
1) 1601년 영국 엘리자베스 구빈법
(1) 배 경
중세 영국의 경제적 바탕이었던 봉건제도는 이미 14세기 중반부터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1348년부터 1349년 사이의 흑사병으로 영국 인구의 1/3이 사망하고, 백년전쟁과 장미정쟁에 동원되었던 많은 농노들이 전쟁이 끝난 후 도시에 머물게 되자 장원의 노동력이 부족을 심화시켰다. 여기에 경작지를 목유지로 전환하는 엔크로저운동이 수많은 부랑 농민, 즉 노동력 있는 빈민을 발생시켰다. 이들은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반사회적 존재로 여겨졌으며, 국가는 빈민들을 범죄자와 동등하게 취급하였다. 영국에서 최초의 구빈법적 통제는 1349년 제정된 노동자조례로 나타났는데, 이 법령은 당시 흑사병과 흉작으로 인한 인구감소와 유랑민들의 증가에 따른 봉건사회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노동자조례를 비롯한 일련의 후속 입법들은 봉건사회의 붕괴를 초래하는 제반 무질서에 대해 가혹 처벌을 가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즉 웹(Wedd) 부처의 표현대로, ‘억압을 통합 구제가 구빈법 체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조례는 유민과 걸인 등 빈민들의 지리적 이동을 금지시키고, 자신의 교구를 벗어나는 사람들은 가혹한 체벌을 가하였다. 1388년 재정된 구민법은 구걸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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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해 일종의 면허제를 실시하였다. 즉, 모든 빈민들은 이주의 자유를 제한 받고, 근로능력이 없는 빈자에 대한 구호만이 허용되었다.
(2) 엘리자베스 구빈법에서 체계화된 구빈행정의 특징
1601년 엘리자베스 구민법은 14세기 이후 발달되어 온 영국 구빈법 체계를
집대성한 것이다.
첫째, 빈민들을 특성에 따라 집단화하고 차별적으로 대처하는 구빈행정의 원칙을 확립하였다. 엘리자베스구빈법은 빈민을 세 집단으로 분류하였다.
① 근로능력이 있는 건장한 빈민으로 이들은 구제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작업장으로 보내졌으며, 극소한의 구호가 허용되었다.
② 근로능력이 없는 무능력한 빈민으로 이들은 구제할 가치가 있는 빈민으로 분류되어 구빈원에 수용되어 보호를 받았다.
③ 빈민아동들로 이들은 도제수습의 기회를 제공하거나 고아원에 수용 보호되었다.
만약 근로능력이 있는 건장한 빈민이 작업장에 입소하는 것을 거부할 경우 그들은
교정원(house of correction)에 보내져서 범죄자와 같은 처벌을 받았다.
둘째, 엘리자베스구빈법은 구빈행정체계에 있어 전국적 통일성을 기하였다.
엘리자베스구빈법은 추밀원을 정점으로 하여, 교구를 말단의 행정단위로 삼아 각 지방의 치안판사들이 교구민 중 선발된 2~4명의 빈민감독관에게 구빈행정의 책임을 맡겼다.
(3)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구빈의 4대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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