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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사]조선 시대 여성의 혼인 풍습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13 | 최종수정일 2015.10.0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조선 시대 여성의 혼인 풍습

목차

서론

본론
※ 칠거지악
※ 삼불거
조선시대 혼인제도
․ 결혼
․ 이혼
․ 재혼
․ 첩제

결론

본문내용

◉ 서론
조선사회는 유교를 지배이념으로 몇 가지 특성을 볼 수 있다.
첫째, 엄격한 신분제 사회이며, 둘째는 철저한 남녀유별 사회이다. 성리학 수용 이후 성리학에서는 신분을 생래적 ․ 사회적 계급으로 인식하며 양반 ․ 중인 ․ 상민 ․ 천민의 4계급이 엄격히 구분되었고 각 계급간의 혼효를 막기 위하여 철저한 계급 내혼제가 행하여졌다. 특히 남녀 유별관은 동양철학사상을 대표하는 주역의 음양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주역은 우주의 원리와 인간존재의 원리를 합일시킨 것으로 “남녀유별” 을 우주질서의 근본원리로 해석한다.
“하늘의 길은 남자의 원리를 이루고 땅의 길은 여자의 원리를 이룬다. 이 두기가 교감하여 만물을 생성 ․ 변화시킨다. 만물이 이렇게 해서 창조되고 또 창조되며 변하고 화하는 것이 끝이 없다.”
이는 변화하는 현상의 근원작용을 음양의 어느 한 면에서 구하지 않고 양자 사이에서 교류되는 감에서 구한 것이므로 이를 동양적 감의 일원론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음양 그 자체는 대등한 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기질지성에서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 즉, 대등하지만 차이가 있다. 라는 사상은 조선전기 소혜왕후가 저술한 “내훈”이나 조선후기 이덕무의 “사소절”에서 한결같이 존중되고 있다. 사소절 에서는
“하늘과 땅은 비록 높고 낮더라도 그 만물을 길러내는 힘은 한가지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내는 비록 동등하다고 하더라도 강하고 부드러운 분수를 어겨서는 안된다.” 라고 부부의 상호관계를 설명하고 있듯이 음과 양 그 자체는 평등하지만 강하고 부드러운 기질을 강조하고 있다.
남자는 외사를 여자는 내사를 담당하여 상대방의 일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 조선시대 양반 남자의 외사란 정치와 학문이었고, 내사는 경제적 실권까지를 포함한다. 부부간의 인격적 존중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일반 향민들을 교화하기 위하여는 향약을 실시하였다. 덕업상권 ․ 과실상규 ․ 상부상조를 골간으로 하는 향약의 내용은 반상과 적서양분을 엄히 할 것과 부모에게 불순하고 형제간에 불목하고, 아내를 구타하고, 정처를 소박하거나, 과부를 강간한 자는 극 상벌로 처한다고 하였다. 이는 남성의 일방적 횡포를 규제하고 여성을 보호하는 매카니즘이 존재하였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하겠다. 토지경제를 중심으로 한 농경사회에서 여성을 땅과 음에 대비하였다면 전적으로 낮은 가치만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하겠다.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사드리는 지모신 신앙은 농경사회에서 보편적인 현상이다. 조선왕조에도 일년에 두 차례씩 왕이 친히 사직단에 나아가 제사를 올렸다. 따라서 여성에게 존칭어를 썼던 것도 지모신 신앙과의 연계에서 그 뜻이 바르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 참고 자료 : 한국여성학연구서설(지식산업사) - 강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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