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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사]제주 4.3항쟁의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의 연구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05.1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9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제주 4.3항쟁의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의 연구

목차

I. 들어가기
II. 제주4.3항쟁의 경제.사회적 측면에서의 발생요인
Ⅲ. 8.15해방 후 제주도의 경제상황
Ⅳ. 8.15해방 후 제주도의 사회, 문화상황
Ⅴ. 제주4.3항쟁 이후 제주도의 경제적 영향
Ⅵ. 제주4.3항쟁 이후 제주도의 사회.문화적 영향
Ⅶ. 맺음말

본문내용

1. 제주도4.3항쟁의 경제적 측면에서의 발생원인

(1)농업구조와 빈곤
미군정기에 남한에서 조선공산당~남조선노동당이 시도한 지지기반은 노동자와 더불어 농민이었다. 이는 당시의 산업구조가 제1차 산업위주로 편성되어 있어서 이들이 전체인구의 주종을 이루고 있었고, 이들은 소위 「프로레탈리아」계급으로서 그들이 표방하는 평등사회건설에 잘 호응할 수 있는 집단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서울, 인천, 대구 등지의 공업지대에서는 공장노동자도 그들의 주요포섭 대상이었다. 제주도4․3무장봉기의 주도세력인 남조선노동당 제주도위원회 당원과 인민유격대원 내지 자위(自衛)대원은 일본군인, 군속 또는 피고용자나 해외(주로 일본)에 거주하던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농민출신이었다. 1946년 9월 현재 남한의 농업인구는 전체인구 19.369천명 중에서 그의 65%인 12.488천명이었고, 제주도의 농업인구는 1946년 현재 전체인구 276천명 중에서, 그의 약 65.6%인 181천명으로 추정된다. 당시 농민으로 하여금 좌익급진세력에 가담하도록 할 수 있는 일반적 요인으로서 토지소유의 불균형과 소작관계가 거론될 수 있는데, 제주도의 상황은 농민의 토지소유관계가 일부 육지에서와 같이 심한 불균형사태를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 결과 소작농의 비률이 극히 낮아서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농민의 계급적 대립의식을 조장할 만한 상태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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