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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고려의 경제구조

저작시기 2005.09 |등록일 2006.05.0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600원

소개글

중세사회에서는 농업을 중심으로 한 자연경제체제를 영위하고 있었기에 그 기반이 되는 토지제도는 고려의 경제제도를 언급함에 있어서 중요하게 다루어 왔다. 그렇기에 고려의 토지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던 전시과체제의 뜻과 정비, 운용을 살펴보고 또한 고려의 재정제도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고려의 경제제도의 특징이 어떠하였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목차

1. 머리말

2. 고려의 토지제도
⑴ 전시과체제의 의미
⑵ 전시과체제의 정비
⑶ 전시과 이외의 토지제도
⑷ 전시과체제의 운용
⑸ 토지국유제론

3. 고려의 재정제도

4. 맺음말

본문내용

양반전시과의 지급대상이 문무 양반과 그에 준하는 서리 등 관료층과 군인․향리 등 직역부담자로 구분되어 있는데, 전자가 지급 받은 토지를 직전, 후자가 지급 받은 토지를 전정이라고 한다. 전자는 경영 관리와는 관계없는 수조권의 지급에 불과하지만, 후자는 군인전의 경우와 같이 공직․공역에 종사하는 직역을 매개로 분급되고, 수전자 60세가 되면 적자 또는 적손에게 직역과 함께 토지가 세습됨으로 이를 전정연립이라고 한다.(이것이 일반전시과이다.) 이와 병행하여 직역과 관계없이 무산계가 수여된 계층, 승려 등의 별사전시과가 있는데, 이는 일반전시과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전시과제도에서 주목되는 것은 어떤 지목의 토지가 전시과의 과전으로 배전되었을까하는 문제이다. 조선왕조 초기의 과전법처럼 민전 위에 설정되었느냐, 아니냐에 따른 양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그 중 후자는 과전의 기원이 나말여초 호족이 소유하고 있던 전장이 중앙집권적 체제가 강화되면서 일단 국가에 회수되는 형태를 취했다가 다시 호족 곧 신왕조의 관료군에게 재분배되었다고 보는 점에서 나왔다. 이와 관련되어 전왕(수취권자)인 관료가 과전에서 어느 정도의 전조를 수취했을까하는 문제가 수반되나 아직 해결은 보지 못했다. 전조자의 견해와 같이 과전이 민전에 설정되었다면 전주는 민전의 수조규정에 따라 1/4 또는 1/10을 받았을 것이지만, 후자인 경우는 과전의 수취규정인 1/2을 받았을 것이다. 다음으로 과전이 어떻게 경영되었는가 하는 문제인데, 이는 과전의 지목과 관련되어 이해되어야 한다. 전자일 경우 당연히 자립 소농민에 위한 자가 경영이 이루어졌을 것이나, 후자이라면 지대 의 수취를 목적으로 하는 소작제의 방식으로 하는 소작제의 경영을 취했을 것이다. 통설은 과전은 소작제의 방식으로 전호에 의하여 경영되었으리라는 것이었다. 곧 양반 과전은 수조권이 부여된 단순한 분급수조지에 불과한 것이며 그것의 경작․생산․수취․수송은 전주(양반)가 아니라 수령인 것으로 이해했다. 이에 비해 신설은 과전은 해당 양반들이 종래에 소유하고 있던 토지 내지는 그 친족들의 소유지로써 편성된 것이며, 이 토지의 경영관리에 책임을 진 것은 양반의 대리인이나 그 친족들이었을 것으로 보아 전시과 체제 내에서도 양반의 지주적 성격을 인정하려 하였다.
그리고 과전은 과전법과 같이 경기내의 토지로 분급되었다고 보는 견해와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었다는 견해가 있다. 또 과전의 지급 액수가 규정대로 지급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분명치 않다. 단지 토지 재원의 만성적 부족상태를 감안하여 군인전과 마찬가지로 지급의 최고액을 표시한 것에 불과하여 정액대로 지급되지 못하였다고 본다. 그래서 토지가 규정대로 지급된 곳을 족정, 미달된 것을 반정이라고 하는 해석도 있다.

참고 자료

장동전외, 한국사강론,1992
배용일, 한국사개설, 대왕사,1993
이현종, 한국의 역사, 대왕사, 1982
이기백, 한국사신론, 일조각,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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