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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세사]고려사회 성격론

저작시기 2005.05 |등록일 2006.05.0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일반적으로 고려사회를 귀족제사회로 여겨왔다. 그런데 근래에 새로이 고려를 관료제사회로 파악해야 할 것이라는 이설이 제기되어 논란이 되었는데 그럼, 고려 사회 성격을 귀족제로 보는 논자들의 논거는 무엇이며 관료제로 보는 논자들의 논거는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목차

1. 머리말

2. 문벌귀족제와 관료제
⑴ 귀족의 일반적 개념과 지표
⑵ 고려사회 성격론

3. 맺음말

본문내용

고려시대의 정치사 분야에서 중요한 과제인 정치적 성격에 관한 연구는 1970년대 이후 고조되었다.
일찍이 김의규는 관인이 귀족화 되는 하나의 모멘트를 음직의 기초적 연구로서 모색하였다. 정치제도와 관련하여 관인지배층의 신분체제에 주안점을 두고 음직제의 성립과 변천과정 및 그 운용의 실제를 고찰하여 고려관인사회의 정치적 배경과 신분세습의 구조해명에 접근하였다.
음서란 부조의 음덕에 따라 관리로 등용하는 제도로, 5품 이상 고급관료의 자손은 원칙적으로 1인에 한하여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 조처로 이해하였다. 그런데 자손은 직자, 수양자, 내외조, 제를 비롯하여 생질, 여식까지 포함되었으므로 그 범위는 원칙보다 훨씬 넓혀질 수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음직출신 101인에 대한 분석으로 출사자는 5품 이상으로 진급하여 다시 자손에게 전대에 걸쳐 음직을 전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을 예증하였다.
고려사회의 정치적 성격론에 관한 연구는 주로 관인층을 선발하는 두 제도인 음서제와 과거제의 문제를 귀족제 내지는 관료제를 가름하는 개념 설정의 기준으로 삼아 추구되었다.
먼저 변태섭은 한 시대의 성격은 그 시대를 주도하던 지배층의 존립형태를 기준으로 규정되며, 고려의 귀족층은 음서제를 기반으로 한 문벌 귀족이었으므로 고려는 귀족사회였다고 전제하였다. 그리하여 귀족사회는 신라 골품제도의 발전된 형태로서 문벌에 의해 제약된 사회이며, 개인의 능력에 의한 관료제가 좀 더 발전한 조선 양반사회의 성립에 전 단계로 보았다.
종래 통설로 되어 온 귀족사회설에 이의를 제기하고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 박창희는 고려는 과거제에 입각한 관료제사회라는 새로운 견해를 제창하였다.
고려는 광종~성종대에 군주 독재적 왕조체제가 확립되고 관료제가 성립되었으며, 과거관료가 주도적 정치세력으로서 등장하였으므로 과거제는 관리등용법상 주되고 결정적인 조직.가치체계임을 논증하였다. 이때 음서제는 과거제에 부수적이며 오히려 과거제가 엄존해 있었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문벌은 과거제에 의거하여 성립되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한 논거로 《高麗史》열전에 입전되어 있는 650명의 인물들을 분석하여 보면 그 대부분이 과거급제자가 아니면 지공거였으며 이를 다시 주도적인 위치에 섰던 관료의 숫자를 따졌을 때도 이러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은 기본적으로 관직이 혈계와는 별반 관계없이 개인의 능력 여하에 의거하여 주어졌다는 것을 뜻하며, 동시에 그로써 과거가 얼마나 중시되었던 가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참고 자료

* 김의규,『고려사회의 귀족제설과 관료제론』, 지식산업사, 1985.
* 박창희,「고려시대 ‘관료제’에 대한 고찰」,『력사학보』58, 1973 ;『한국사의 시 각』1984:「고려시대‘귀족사회’설에대한재검토」,『백산학보』23, 1977 ;『한국사의 시각』1984.
* 한국중세사학회,『고려시대사강의』, 늘함께, 1997.
* 역사비평편집위원회,『한국 전근대사의 주요 쟁점』, 역사비평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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