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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고려시대의 교육

저작시기 2006.03 |등록일 2006.05.0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Ⅰ. 서론

과거없이는 현재도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과거 역사속의 여러가지 사실들을 통해 잘못된 점은 고치고 잘된 점은 본받고 보완해 가며 현재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가 한국교육사를 배우는 것도 단지 과거의 교육제도를 알고서 넘어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과거 교육현실을 이해하고 현재 교육에 발전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교육사의 연구를 통해 교육적 예지를 얻고, 한국의 교육사를 앎으로서 교육현장에 응용하여 적용할 수 있다. 한국교육사의 목표는 교육의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교육현실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문제점을 비판하는 동시에 미래교육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하는 것에 있다.
한국교육사의 연구에서 한국사상의 원형는 무교사상과 단군신앙으로 보고 있다. 단군의 홍익인간이념을 시작으로 우리 역사 속에는 수 많은 교육적 진리가 담겨져 있다. 어느 시기 하나 중요하지 않은 시대는 없겠지만 여기에서는 고려후기의 교육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고려전기는 문관이 우대되었던 시대이다. 문관들이 권력을 잡고 무관들의 우위에 있었던 시기이지만 결국 무신의 난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문사들의 존재와 문교의 위상은 위축되게 된다. 하지만 문사들의 존재를 위축시키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문사들로 하여금 자신의 책무에 대한 반성의 계기도 마련하게 된다.
지금부터 고려후기를 몽고침략전 무신집권기와 고려항몽기, 몽고 간섭기로 나누어 문사와 무사들의 갈등이 있었던 시대적 상황과 교육정책의 변화에 대해서 알아보고, 사학 12도와 향교를 중심으로 고려후기 학교제도의 변천과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또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와 지눌의 사상을 통해 대표적인 고려후기의 교육이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목차

Ⅰ. 서론
Ⅱ. 문사와 무사
1. 몽고침략전 무신집권기
2. 고려 항몽기
3. 몽고 간섭기
Ⅲ. 고려 후기 학교 제도의 변천
1. 사학 12도의 변화
2. 고려 후기의 향교
Ⅳ. 고려 후기의 교육이론
1. 김부식 과 일연
2. 지눌 (1158-1210)
Ⅴ. 결론

본문내용

1. 몽고침략전 무신집권기
무신집권기 시대에 문사들의 과거 응시자 수는 줄었지만 급제자의 수는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 원인으로는 첫쨰, 문신의 협조 없이는 국가운용과 정권유지가 어려웠다는 점과 둘째, 무신집권자들은 급제자를 늘리고 마음에 맞는 사람을 등용하면서 그 불만을 없애려 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신들의 지위가 올라간 시기였지만, 문신들이 그 세력에 죽어 자신들을 뜻을 무조건 굽히지만은 않았다. 이규보가 조태위에게 올린 편지를 살펴보면 무신집권 하에서의 문신들의 당당함을 엿볼 수 있다.
또 무신집권기에도 국자감, 12도, 향교 등과 같은 교육기관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과거응시자가 줄고 급제 후에도 진로가 불확실하여 교육은 사교육 중심으로 나름의 발전을 도모하여야 했다.

2. 고려 항몽기
고종대는 고려건국 후 최대의 시련기였다. 거란의 침공과 몽고침략으로 인해 수도를 강화로 옮기게 되고, 시대는 무척 어지러웠다. 이 시기에는 정부의 통치기능은 물론, 백성들의 정상적인 생활도 어려웠으며, 교육도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웠다. 그 결과로 국학교육이 침체되고 승보시가 일시 중단되는 사태도 일어났다.
하지만 그런 피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국학의 명맥은 유지되었는데 천도직후는 강화향교를 국자감으로 삼았고, 이후에는 새 국자감을 건설하여 그 명맥을 이어갔다. 혼란스런 시대상황 속에서도 국학의 명맥은 유지된 까닭은 국가직면 문제의 해결은 국자감과 같은 교육기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3. 몽고 간섭기
몽고 간섭기에 충렬왕은 너무 학문의 문야가 치중되었다는 생각에 국자감 관직체계와 별도로 전공별 교수제를 채택하고, 경사교수도감을 설치하였다.
또 이시기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안향을 들 수 있는데 최초로 주자학을 전래하였으며, 문교진흥에 가장 현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불교국가였던 고려사회에 유교를 사회의 중추적 이데올로기로 내세웠는데 이는 개인주의적 신비주의나 비현실적 개혁사상은 합리적, 체계적인 사회통치 이념으로 계발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또한, 훈고학적 학풍이 사변적, 심성학적, 철학적으로 바뀌어 간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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