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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성호 이익의 사회 개혁론

저작시기 2006.04 |등록일 2006.05.0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성심성의껏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참고하셔서 좋은 성적 받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아울러 자료 구매하시는 분들을 위해 예쁜 레포트표지도 첨부하였습니다. *^^*

목차

Ⅰ.들어가며
Ⅱ. 생애와 학문관의 형성배경
Ⅲ. 奴婢論
Ⅳ. 更張論
Ⅴ. 나오며
# 참고문헌

본문내용

조선 후기에 활발한 활동을 보인 星湖 李瀷 선생은 당시의 사회 현실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과 실질적으로 民生에 적합한 개혁을 주장한 학자로서, 그의 사상은 안정복, 윤동규, 이병휴 등과 같은 후학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사회 개선 방안에 있어 조선사회의 실정에 맞는 개편을 추구하였는데, 이는 혁명적인 변화를 추구한 것이 아니기에 자칫 소극적인 대응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그보다는 사회의 안정과 개선을 위해 그 시대 사람이 고민한 대응책이 얼마나 현실적이며, 효과적인 것인지에 대해 초점을 두어 파악해야 한다. 이 장에서는‘ 更張論’ 과 ‘奴婢論’이라는 그가 주장한 사회 개편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Ⅱ. 생애와 학문관의 형성배경

성호 이익이 살았던 시기는 숙종조와 영조대로서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전반이었다. 이 시기는 양란 후 국가 재건의 기틀이 잡혀나가는 한편 정치권에서는 치열한 당쟁에 의해 지배계층의 분열이 심화되어간 때였다.
이익의 가문은 여주 李씨로서 조선조에 들어와 현달한 양반으로, 당색으로 보면 畿湖南人의 핵심가문에 속하였다. 특히 부친 이하진은 당시 남인의 영수격의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익의 집안도 당쟁에 휘말리면서 큰 변화를 겪었는데,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에 의해 이하진은 파직되어 평안도 운산으로 유배되고 이 유배지에서 이익이 태어났다. 이익의 나이 26세에는 형 이잠(李潛)이 당시 집권세력이던 노론을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역적으로 몰려 장살 당하였는데, 이 사건으로 이익은 과거응시를 포기하고 재야에서 학문 연구를 할 것을 다짐하였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낮에 농사를 짓고 밤에는 책에 묻혀 사는 주경야독(晝耕夜讀)과 사농일치(士農一致)의 생활을 하였는데, 이러한 직접적 체험이 훗날 그가 제시한 농촌개혁안의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익의 경제적 배경은 자영 중소지주라고 할 수 있다. 많지는 않으나 선조의 전장(田莊)을 물려받아 이를 가꿔가며 경제적으로 궁색하지는 않게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자신과 아들인 맹휴(孟休)가 평생 병을 앓는 등 재산을 소모해 말년에는 아주 어려워졌다. 이익의 이러한 모습은 경신대출척 이후 정치적으로 몰락한 남인들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또한 그의 학문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중형 이잠(李潛)으로부터 수학한 이후로는 일정한 스승을 두고 배우지는 않았다고 한다. 경학 쪽으로는 주자성리학에서부터 출발하여 퇴계의 학문에 맥을 대고 있었다.

참고 자료

* 이익, 『星湖雜著』「奴婢論」「更張論」, 삼성미술문화재단, 1972.
* 조동걸 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上, 창작과 비평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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