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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황진이 시조의 미학성

저작시기 2005.09 |등록일 2006.05.0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황진이의 출생에 관한 현존하는 직접자료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간접사료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간접사료인 패설류 문헌들에서는 황진이가 황진사의 서녀임을 밝히거나 또는 개성의 맹인의 딸임을 밝히고 있다.
동서고금의 문학작품에 있어서 애정문제가 제기되어 있는 것이 단연 으뜸일 것이며, 그 대상에 있어서는 임금님에 대한 사랑, 부모님에 대한 사랑․형제․친우․자연․이성에 대한 사랑 등 다양할 것이나 순수 문학적 측면에서 볼 때 역시 이성간의 사랑이 문학적 진가를 발휘하기에 적합하리라고 본다. 황진이의 시조작품 역시 애정을 주제로 한 작품이 대다수이다. 이제부터 황진이가 인생을 상고하면서 그녀의 시조작품 6수를 살펴 보고자한다.

목차

1. 황진이의 출생
2. 황진이의 문학세계
가. 청산리 벽계수야
나. 청산은 내뜻이요
다. 산은 옛 산이로되
라. 동짓달 기나긴밤
마. 어져 내일이야
바. 내 언제 무신하여
3. 황진이 시조의 문학사적 위상

참고문헌

본문내용

3. 황진이 시조의 문학적 위상
고전문학은 생명없는 지나간 존재가 아니고 오늘의 문학적 생명의 원천이 되며 동시에 끊임없이 오늘의 문학에 힘차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생명을 공급하여 주고 있기 때문에 고전문학은 가치가 있고 또 존중할 수 있는 것이다.
고려 말에 발생한 시조는 향가와 고려가요의 문학적 전통을 이으면서 형성되어 지금까지도 창작되는 한국시가문학의 전형적 갈래라고 할 수 있다. 현재에도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는 것이 시조이며, 이전의 문학을 시조의 탄생을 위해 부침하였다.
황진이가 활약하던 시대는 이미 정형을 이룬 시조가 많은 사대부들에 의해서 창작되면서 점차 그 문학성을 배가하고 있던 때이며 조선 중기에 이룩된 시조문학의 절정기 바로 직전의 시대임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에 태어나 비록 기녀의 신분이지만 그것에 구애받지 않고 작가로서의 창조적 역량이 마음껏 발휘된 황진이의 시조는 곧 이어지는 송강․고산의 절정기를 준비하는 하나의 디딤돌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시조문학사상에서 황진이의 시조가 갖는 위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의 작품성이다. 그토록 높은 격조를 유지하면서 인정과 애정의 기미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은 시조문학 전체를 들추어 볼 지라도 별로 많지 않다고 하겠다.
또한 여성작가로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황진이 이전에 소춘풍이라는 기녀가 연회에서 3수의 시조를 불렀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잔치의 흥을 돋구기 위한 즉흥적 작품으로 문학성이 뛰어나지 못한 반면, 황진이는 이를 극복하여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문학적 경지를 개척하여 이를 홍낭, 매창 등에게 여성시조의 전통을 이어주게 되었다.

참고 자료

『고시조 연구』 국어국문학회 편, 태학사, 1997.
『한국시조문학론』 정재호, 태학사, 1998.
『한국시조작가론』 원용문, 국학자료원, 1999.
『고시조 산책』-인물시조선 성낙은, 국학자료원, 2000.
황진이 시문학 연구, 김흥년,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2000 석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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