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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화를 통해본 훈구와 사림

저작시기 2005.04 |등록일 2006.05.0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사화를 통해본 훈구와 사림
사학과 전공레포트입니다

목차

一. 序論

二. 本論
(1) 훈구세력의 등장
(2) 사림세력의 등장배경
(3) 사화
(4) 사화 이후의 정국

三. 結論

본문내용

一. 序論
고려말기 원과 권문세족(權門勢族)으로 횡포로 나라의 모든 것이 황폐화 됐을 무렵, 남송의 성리학을 받아들인 신진세력이 공민왕의 개혁정치에 의해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비록 이 개혁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신흥사대부들은 정계 진출은 계속 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성계는 위화도회군을 계기로 정권을 잡게 되고, 新興士大夫세력은 이성계를 따르는 정도전을 주축으로 하는 역성 혁명파와 고려의 존속을 지지하는 정몽주를 주축으로 하는 온건개혁파로 나뉘게 된다. 하지만 온건개혁파의 정몽주가 이방원의 철퇴에 목숨을 잃고 그 후 이씨 조선이 건국된다. 이에 따라 역성 혁명파에 반대 해온 온건개혁파 신흥사대부는 지방으로 내려가 향촌에서 교육을 통한 후진 양성에 힘쓰게 된다. 이 온건개혁파가 훗날 사림파이라 불리게 되어 역사에 다시 등장을 하게 되며, 역성 혁명파는 훈구파라 불리게 되어 조선 초기사회를 이끌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勳舊와 士林중 사림에 더 비중을 두어 사림이 정계에 재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며 사림파의 등장에 따른 훈구파와의 여러 갈등, 권력다툼 때문에 생겨나는 4대 사화와 이러한 사화 속에서도 끝끝내 중앙정계의 중심에 서게 되는 사림의 이후 정국 등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二. 本論
(1) 훈구세력의 등장
고려후기부터 재지중소지주인 향리층 속에서 성장한 신흥사대부들이 점차 지배세력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성리학과의 접촉을 체험한 신흥사대부들은 고려와 조선의 왕조 교체과정에서 그 입장을 달리하면서 두 계열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 가운데 조선 개창에 적극 참여하거나 지지한 세력들은 개국공신(開國功臣), 혹은 여타의 공신에 책봉되면서 건국 직후 집권세력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였다.
개국공신 주도하의 정국 속에서 왕위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왕위 쟁탈전이 일어났다. 兩次의 왕자난을 통하여 定社 ․ 佐命功臣이 책봉되었다. 이들 양 공신은 개국공신과 더불어 선초의 3공신으로 불려지면, 태종의 즉위와 직접적인 관련성을 지닌, 말하자면 태종의 즉위에 대한 명분의 확립을 위해서 책봉된 공신이기 때문에 개국공신과 더불어 태종대의 중앙권력을 장악하였다. 실제로 태종대의 정치상황을 살펴보면 이들 3 공신이 주요관직을 독점하여 정국을 운영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참고 자료

고석규 외10명,『한국사』, 과천 : 국사편찬위원회, 1996
강만길 외11명, 『한국사 7』, 서울 : 한길사, 1995
이기백, 『한국사신론』,서울 : 일조각, 1999
이덕일, 『사화로 보는 조선역사』, 서울 : 석필,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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