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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6세기 재지사족의 성장과 농업의 발전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6.04.3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4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정성껏 준비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재지사족의 성장과 농장
(1) 사족층의 성장과 지주제와의 관련성
(2) 16세기 농장과 지주제
1) 농장형성과 노비증식
2) 주가・노가・토지의 결합
3) 농장의 관리
(3) 16~17세기 농장경영형태
1) 노비의 소경영과 작개제
2) 주가의 소경영과 가작제
3) 비예속인과 병작제
(4) 17세기 농장경영의 해체

3. 농업의 발달 (이태진의 주장과 그에 대한 반론을 중심으로)
(1) 수리시설의 발달
(2) 저평지의 개간
(3) 이태진의 주장의 배경과 문제점

4.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머리말
조선초기와는 달리 16세기 조선사회는 국가재정의 만성적 적자, 국역체제의 해체, 공민 ․ 공전의 감소, ‘양소천다’ 현상의 발생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국가운영이 매우 어려워진 시기였다. 공적 영역의 붕괴는 그 구조의 최상위에 위치한 국가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특히 국역체제의 해체가 본격화하는 1520년대 후반부터는 공적 혹은 사적 영역을 조절 ․ 통제하는 국가 고유의 기능이 상실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는 중앙의 권력자 혹은 관료층 같은 지배세력 이외에도 ‘사족’이라 칭하는 지방에서 성장하고 있는 새로운 계층이 존재했다. 이들은 이미 조선 초기 유향소 존폐과정에서 지방행정의 주도권, 곧 향권을 둘러싸고 국가와 대립하고 있었으며, 16세기 중반 이후 향안작성, 서원건립, 향약 시행 등 자치기구의 설치와 운영으로 기반을 확대하고 있었다.
이 시기 사족층의 성장은 당시 사회상과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국가재정의 만성적 적자상태, 국역체제의 해체, ‘양소천다’ 현상과 같은 공적 영역에서의 급격한 변화가 16세기 이래 사회구조로 정착되면서 사족층도 이러한 변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들 대부분은 해체되어가는 국가의 전반적인 구조를 그들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시켜 영향력을 확대해나갔다.
본 발표문에서는 16세기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합류하게 된 사족층의 성장과정을 경제적 분야와 연관 지어 지주제, 특히 농장 발달에 주목하여 사족층과 지주제와의 관련성, 사족층의 농장경영 방식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는 농업의 발달 과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2. 재지사족의 성장과 농장

(1) 사족층의 성장과 지주제와의 관련성
국가가 사족층을 주요 사회세력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특권적 지위를 추인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사족층이 급성장한 시기는 중종 20년을 전후한 시기였다. 그런데 이 무렵은 국가재정의 지출 심화, 중앙재정의 만성적 적자, 국역체제의 해체, 양인층 몰락과 천인층 증대현상 등 공적 영역에서 붕괴의 조짐이 나타난 시점이기도 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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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16세기 양반가의 ‘작개제’」, 『역사와 현실』9, 1993
김건태, 「16~18세기 양반지주층의 농업경영과 농민층의 동향」,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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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 『조선전기농업경제사』,한길사, 1986
김성우, 『조선 중기 국가와 사족』, 역사비평사, 200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28, 1996
이태진, 『의술과 인구 그리고 농업기술』, 태학사, 2002
이태진, 『한국사회사연구』, 지식산업사, 1986
정진영, 「16, 17세기 재지사족의 향촌지배와 그 성격」, 민족문화논총 10,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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