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동양근대사]元代의 대외관계

저작시기 2006.04 |등록일 2006.04.2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역사상 유례없는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인들의 팽창과정과 원대의 대외관계의 모든것!!!

목차

Ⅰ.머리말
Ⅱ.몽골제국의 성립
1.몽골부족의 발전
2.몽골제국 초기의 정복전쟁
Ⅲ.원제국 시대
1.쿠빌라이의 즉위와 남송정벌
2.고려 원정
3.일본 원정
4.인도차이나, 자바 원정
5.원대의 동서 문화교류
Ⅳ.맺음말

본문내용

Ⅰ.머리말

5대 10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중국을 통일한 송나라는 문치주의 정책으로 인한 군사력 약화로 북방민족들을 제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수세에 몰리게 된다. 거란의 요에 이은 여진의 금이 흥기하자 송은 수도를 함락당하고 남쪽으로 피난하여 그 명맥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화북을 지배하게 된 금은 중국경략에 치중한 나머지 초원 지역에 대한 감시를 소홀이 하게 된다. 이 때 초원에서는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할 몽골부족이 세력이 키워나가며 그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여기서는 전무후무한 정복전쟁을 통해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하고, 이민족으로서는 최초로 전 중국을 지배하게 된 몽골족의 팽창을 살펴보고 원대의 대외관계에 대해 알아보겠다.


Ⅱ.몽골제국의 성립

1.몽골부족의 발전
당대까지만 해도 몽골족은 보잘 것 없는 작은 부락사회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의 초기 거주지는 기후와 토지조건이 열악하여 어렵게 유목생활을 했었다. 그런데 9세기 중반 위구르제국이 붕괴되면서 대규모의 민족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 때 몽골이라는 부족도 이들 틈에 섞여 몽골초원으로 내려왔다.
몽골사회의 각 부족은 부족간의 패권을 둘러싸고 서로 항쟁을 되풀이하면서 전투력을 키워나갔다. 그런데 12세기 초에 요가 멸망하자 몽골지방에 대한 거란족의 압력이 소멸되었다. 뒤를 이은 금은 중국 정벌에 힘을 쏟았기 때문에 몽골지방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였다. 이리하여 외부로부터의 압력이 사라진 대신 몽골 부족 패권다툼이 더울 치열해지면서 케레이트, 메르키드, 타이지와트, 나이만 등 여러 부족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각 부족은 때로는 부족국가를 형성하여 汗 또는 可汗이라는 군장의 출현은 있었으나 통일제국은 건설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중국진출에 성공한 금나라도 이 지역에서 강력한 통일세력이 출현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부족 간의 내분을 부추겨 이를 방해했다. 그러나 여진 사회의 급격한 한화에 따라 금나라의 군사력이 약화되는 틈을 이용하여 몽골의 발전은 가속화 되었다.
이 때 鐵木鎭(테무진)이 몽골고원을 통일하고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테무진은 처음 케레이트부와 동맹관계를 맺고 그 원조를 받아 몽골부의 지도권을 장악한 후 케레이트부를 병합하고, 이어 여러 부족을 차례로 제압해 나갔다. 그 후 나이만부를 격파하여 몽골고원을 통일하고 쿠릴타이(부족장회의)를 열어 汗으로(칭기스칸) 즉위하니, 대몽골제국이 출현하였다.

참고 자료

르네 그루쎄, 김호동외 역,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사계절, 1998
중국사연구실 편역, 『중국역사』하, 신서원 1994
스기야마 마사아키, 임대희외 역, 『몽골세계제국』, 신서원, 1999
신채식, 『동양사개론』, 삼영사, 2004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