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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동양역사]고조선과 고구려는 우리 역사인가?

저작시기 2006.04 |등록일 2006.04.2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조선과 고구려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국내에서 고조선과 고구려의 역사를 문화인류학적으로 해석한 저서가 별로 없다. 경상대학교 이전교수의 글이 유일무이할 것이다. 이 자료는 고조선과 고구려에 관해 문화인류학적으로 해석한 글을 요약한 내용이다.

목차

1. 민족
2. 국민과 인종
3. 군사회, 부족사회, 군장사회, 국가
4. 성읍국가, 도시국가

1. 에가미의 기마민족설
2. 기마민족의 신라 정복설
3. 기마민족 백제의 마한 정복설
4. 백정; 한반도로 들어온 유목민의 후예
5. 브리튼 섬으로 유입된 다양한 민족들
6. 일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의 형성과정
7. 영국 국민의 성립
8. 브리튼 섬의 민족이 시사하는 바

1. 단군신화는 어떤 문헌에 등장하는가?
2. 단군조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3. 기자조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4. 위씨 조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5. 고조선의 영역은 어디인가?
6. 한사군은 언제 어디에 설치되었는가?
7. 낙랑군 설치는 중국에 의한 한반도 지배인가?
8. 한사군 영역내에 토착민의 국가가 존재하였는가?
9. 한강이남지역에 대한 한사군의 영향

본문내용

단군조선의 상징적 실체는 인정할 수 있지만 이를 우리 한민족 최초의 국가라는 인식은 ‘과학적인 역사’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단군조선은 고려시대 후기에 시대적 필요성에 의해 등장한 것이다. 요동 반도를 중심으로 발달한 기원전의 고대문화권은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었지만 이를 단군조선과 연결시킬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다. 신화의 내용을 과학적 역사로 보아서는 안 된다. 강화도에 유독 참성단(塹城壇), 천제암궁지(天祭菴宮址), 삼랑성(三郞城)과 같은 단군의 유적지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강화도로 천도하여 대몽항쟁을 수행하던 시기에 단군이 민족의 시조로 정립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 단군조선의 실체를 인정하더라도 당시 한반도와 주변에는 다수의 민족들이 각각 서로 다른 언어, 다른 관습, 다른 독자적인 신화를 가지고 있었고, 이 다수의 민족들이 오랫동안 문화의 동화과정을 거쳐 후대에 하나의 민족으로 형성된 것이다. 한민족이 형성되기도 전에 고조선이라는 한민족 최초의 국가가 형성될 수 있겠는가?
세 번째, 우리 한민족의 형성에 가장 중요하게 기여한 사람들은 대동강 하구에서 원산만의 남쪽에 거주하였던 마한․ 진한․ 변한 지역의 한어군 계통의 민족이었고, 이북의 부여어군 계통의 민족들은 부분적으로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한민족의 기원을 한어군계 영역이 아닌 부여어군계 영역에서 찾는 것은 발상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한민족의 기원을 단군조선에서 시작하는 것은 ‘과학적인 역사’가 될 수 없다. 이는 후기의 시대적 필요성에 의해 위조되고 날조되고 창조된 ‘비과학적 역사’이다. 하지만 단군이 고려후기 이후 우리민족에게는 정서적, 상징적 의미를 가진 실체임은 분명하고 전통과 문화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의미로 단군조선을 정확히 이해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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