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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1900년대 초 이뤄진 한일간 조약과 한일합방의 불성립론 정리

저작시기 2006.04 |등록일 2006.04.2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700원

소개글

1900년대초 한국과 일본간에 오간 조약들의 절차상 문제들을 꼼꼼히 짚어보았습니다. 비교적 최근의 자료도 참고했고, 주로 한국 측의 입장에서 서술하였습니다. (일본의 주장은 거의 억지에 가까운 것이라 다룰만하다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태진(서울대 국사학과)
역사학계의 중진으로 오랫동안 조선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에 대해 매우 폭넓게 접근하면서 독창적인 해석을 담은 논문을 발표해왔다. 저서로 <한국병합 성립하지 않았다><한국사회발전사론><의술과 인구 그리고 농업기술>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본문
1. 양국 학계의 조약에 관한 입장
1.1. 일본 학계의 입장
1.2. 한국 학계의 입장
2. 각각의 조약에 나타난 문제점
2.1. 한일 의정서
2.2. 제 1차 한일협약(협정서)
2.3. 제 2차 한일협약(을사늑약)
2.4. 제 3차 한일협약(정미조약, 한일협약)
2.5. 병합늑약(한일합방)

맺음말

본문내용

머리말
흔히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 일컫는다. 그 이유는 한국인의 뿌리 깊은 반일 정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반일 정서의 이유는 당연히 일제 강점의 수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막연히 한일합방이 일본의 강제에 의해, 또 일부 매국노에 의해 이뤄졌다고 생각했을 뿐 정확히 그 바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깊이 성찰해보지 못했다. 이런 성찰의 부족은 일본 정계에서 마음 놓고 망언을 하게하는 배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학계에서도 여전히 대한제국 병합을 합법적이고 유효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의 지지로 정계에서 망언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망언을 일삼고, 심지어 무라야마 전 총리가 “<한국 병합조약>은, 당시의 국제관계 등의 역사적 사정 중에서 법적으로 유효하게 체결되어 실시되었던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은 역사적인 인식 부족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바른 역사 인식을 위해 강점의 시작인 병합에 관련한 조약들의 잘못을 되짚을 필요가 있는데, 문제가 되고 있는 조약은 <한일의정서>,<제1차 한일협약>,<제2차 한일협약 - 을사늑약>, <한일협약>,<병합늑약> 이 다섯가지이다.

1. 양국 학계의 조약에 관한 입장
1.1. 일본 학계의 입장
일본 학계의 주장을 크게 둘로 나누면 ‘유효 ․ 부당론’ 과 ‘유효․정당론’으로 볼 수 있다. 어느 입장이건 조약은 유효하다는 것이 일본 측의 주장이다. 유효론을 주장하는 일본 측은 조약의 체결은 당사국간의 합의만으로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하면서 비준서와 같은 서류들은 약속에 의해 생략 가능하다고 말하며, 문서상, 국제법상 조약에 하자가 없음을 주장한다. 다른 점은 부당론을 제기하는 측에서는 강제성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반면, 정당론을 펼치는 측에서는 강제성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유효 ․ 부당론’ 많다고 한다.

참고 자료

이태진. {한국병합, 성립하지 않았다}. 태학사, 2001.
이태진. {한국병합의 불버성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이태진외.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 푸른역사, 2005
이상찬. [1900년대 초 한일간 조약들의 불성립 再論],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 4권, 2005.
김삼웅.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 시대의창,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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