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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마리안느의 투쟁 - 공화국을 향하여

저작시기 2006.04 |등록일 2006.04.2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성심성의껏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참고하셔서 좋은 성적 받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아울러 자료 구매하시는 분들을 위해 예쁜 레포트표지도 첨부하였습니다. *^^*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자유, 공화국, 여신
2. 여신과 시민왕
3. 여신과 그녀의 두 초상
4. 마리안느의 세례
5. 마리아 숭배와 마리안느 숭배
6. 마리안느와 코뮌
7. 두 얼굴의 승리
Ⅲ. 결 론
# 참고자료

본문내용

국가가 형성된 곳이라면 그 어느 곳에서나 국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구성원들의 복종을 얻어내려고 한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존중받으려 하며 그리고 가능하다면 사랑을 받고자 한다. 어느 시대에나 어느 나라에서나 이런 목적을 위해 말과 글의 담론과 더불어 이미지를 동원했다. 인민들이 문자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경우 이미지는 더더욱 필요한 수단이었다.
국가의 정상에 왕이 있다면 국가의 주요 표상은 왕의 이미지이다. 국가 또는 인민이 전통적으로 동물에 의해 상징되는 경우도 있다. 그 동물은 호랑이와 같은 실재의 동물일 수도 있고 용처럼 상상의 동물일 수도 있다. 그런데 프랑스는 상징을 교체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국가이다. 1792년에 왕정이 폐지되면서 당연히 왕의 초상도 파기되었다. 더욱이 혁명 프랑스의 봉건제 거부는 군주제에 대한 거부만큼이나 격렬한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예컨대 동물의 형상을 한 문장의 사용은 뭔가 봉건적이고 낡은 것, 따라서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혁명정부는 새로운 정체인 공화국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방식을 백지 상태에서 창조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바로 그때 혁명정부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로부터 물려받은 서유럽의 특이한 문화전통인 알레고리에 의거했던 것이다. 자유․덕성․학문 등 추상적인 실체, 또는 프랑스․이탈리아․파리․로마 등 너무 광범위하여 가시적일 수 없으므로 결국 추상적인 것과 마찬가지인 실체에 이미지를 주는 것, 이를 위해 여성의 육체를 활용하는 것, 그리고 속성을 나타내는 상징물을 이 여성에게 부여하여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프리지아 모자를 지닌 여성은 ‘자유’이고 거울을 든 여성은 ‘진실’, 곡식 다발을 든 여성은 ‘농업’ 등) 이것이 바로 알레고리이다.
1792년 프랑스 공화국은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자유의 초상을 상징으로 삼고 그 이름을 마리안느라고 부르기로 작정했다.
1789년부터 1879년까지 90년간 마리안느는 투쟁했으며 결국 승리했다. 오늘 우리는 이 시간에 투쟁기간동안 마리안느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확인해 보자.

참고 자료

․ 모리스 아귈롱, 2001, 『마리안느의 투쟁』한길사
․ 콜린 존슨, 2001,『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프랑스사』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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