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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명성황후 - 경복궁 답사기

저작시기 2005.11 |등록일 2006.04.2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4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서문
2. 조사자료
3. 맺음말 - 감상

본문내용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혈혈단신으로 자랐다. 소녀 시절의 명성황후는 불우한 생활을 하였다. 생모가 요절하였고 계모 밑에서 자라며 온갖 역경을 해쳐왔다. 아버지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 세상에 홀로 남은 고아가 돼버렸다. 이로써 가문을 이을 후손이 없게 됨에 따라 동족인 민치구의 둘째아들인 민승호를 맞아들여 가계를 잇게 했다. 이 민승호가 대원군 부인의 오빠였다. 이 경로를 통해 대원군은 민치록의 딸에 대해 알게 된다. 대원군은 세도 정치기의 외척 세력에 의한 폭정을 가슴 아프게 보았기에 아들(고종)의 왕비 간택에 있어서 매우 고심을 하였다. 즉, 왕비로서 적당한 신분적 위치와 품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외척의 세력이 극히 미약한 집안에서 왕비를 맞길 원했던 것이다. 이런 대원군에게 명성황후는 손색이 없는 며느리감이었고, 결국 그는 민씨를 왕비로 맞아들이게 되었다. 결과론적 얘기지만, 이 선택은 바로 대원군의 정치 인생, 게다가 조선의 역사를 바꾸어 놓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하지만 명성황후가 왕비로 간택된 것은 외척에 의하여 국정이 농단된 3대(순조·헌종·철종) 60여 년간의 세도정치의 폐단에 비추어 외척이 적은 민부대부인의 집안에서 왕비를 들여 왕실과 정권의 안정을 도모한 흥선대원군의 배려에 의해서였다.
16세에 왕비로 책봉되어 궁중 생활을 하게 된 이후 당분간은 조용히 그전처럼 책을 읽는 것으로 소일하였다. 하지만 상궁으로 있는 나인이 고종 5년 국왕의 첫째 아들을 낳자 국왕과 대원군은 자기의 혈통을 이어받을 첫 왕손이라 칭하며 그 아기를 몹시 사랑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대원군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운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느끼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명성황후를 정치적 인물로 만드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이런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명성황후는 위기를 뚫고 나가는 방법을 강구할 총명한 지혜를 타고났기 때문에 자신의 힘을 키우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명성황후는 소녀시절부터 집안일을 돌보는 틈틈이 《춘추》를 읽을 정도로 총명했으며, 수완이 능란한 그녀는 수년 후부터 곧 왕실정치에 관여하여 흥선대원군의 희망과는 달리 일생을 두고 시아버지와 며느리 간의 정치적 대립으로 각기 불행을 겪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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