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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고려의 병제 - 군반제설과 부병제설

저작시기 2006.04 |등록일 2006.04.2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고려시대 병제에 관한 논의는 부병제설과 군반제설의 두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이러한 두가지 학설의 대표적인 학자는 부병제설에 강진철 교수, 군반제설에 이기백 교수입니다. 이 두 학자의 의견을 정리하고 부병제와 군반제 이외에 논의 되고 있는 경외군 혼성제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펼치는 말

(1) 부병제(府兵制)설과 그에 대한 고찰(考察)

(2) 군반제(軍班制)설과 그에 대한 고찰(考察)

(3) 그 외 주장 - 경외군 혼성제설

3. 나오는 말

본문내용

1. 들어가는 말

고려시대 병제에 대하여 살펴보면 부병제(府兵制)설과 군반씨족(軍班氏族)설로 두가지 의견이 있다. 고려시대의 병제에 대한 학설은 부병제가 주가 되고 있다. 하지만 부병제가 모방한 것으로 판단하는 당나라의 제도와는 차이가 있기에 고려의 병제를 부병제(府兵制 )로 간주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견해가 엇갈려 이른바 부병제(府兵制)설과 군반씨족설(軍班氏族)설이 대립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의견 중 부병제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강진철(姜晋哲) 교수로, 그는 고려시대 병제를 부병제, 즉 병농일치(兵農一致)의 편제로 보았고, 군반씨족(軍班氏族)설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이기백(李其白)교수로, 그는 고려시대 병제에 대하여 신분을 세습하는 전문적인 직업군인의 개념인 군반씨족(軍班氏族)으로 보았다.
이렇게 의견이 대립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떠한 것이 확실한 정답이라고 논할 수 는 없다. 다만 두 학자의 의견을 두루 살펴보고 그 의견을 참고하여 고려시대의 병제를 부병제(府兵制)냐 아니면 군반씨족제(軍班氏族制)였나를 추측하여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고려시대의 병제를 살펴보기 위해 강진철(姜晋哲)교수의 주장과 이기백(李其白)교수의 주장을 토대로 고려사회의 병제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2. 펼치는 말

(1) 부병제(府兵制)설과 그에 대한 고찰(考察)

『고려사』를 비롯하여 당대를 다룬 사서(史書)들은 대부분 고려의 병제(兵制)가 부병제(府兵制)였던 듯이 설명하여 놓고 있다. 구체적으로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 서문(序文)에

고려 태조가 삼한을 통일하고 처음 6위(衛)를 설치하였는데, 위(衛)에는 38령(領)이 있고 영(領)은 각 1,000人 이었으니 상하가 서로 연결되고 체통(體統)이 서로 이어져서 당(唐)의 부위제(府衛制)와 유사였다.

참고 자료

① 박용운, 『고려시대사』, 일지사, 2002
② 이기백, 『고려병제사연구』, 일조각, 1990
이기백,, 「고려 부병제설의 비판」,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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