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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경주를 찾아서

저작시기 2001.08 |등록일 2006.04.2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경주의 많은 문화유적들에 대해서 조사하고 느낀점을 작성함..
불국사, 첨성대, 안압지, 반월성, 석빙고, 경주국립박물관, 계림숲, 대릉원, 천마총,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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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안압지>
<반월성>
<석빙고>
<천마총>
<대릉원>
<계림숲>
<경주 국립박물관>

본문내용

`불국사` 하면 아무 말 이라도 한마디 덧붙이지 못하고 묵묵히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범영루의 처마에 걸린 아침해와 긴 석축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한 점 갖지 못한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수학여행에다 신혼여행에 효도관광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리 나라사람이라면 한번쯤 다녀간 관광지가 불국사이고 석굴암이다. 그러나 실상은 불국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바로 불국사를 슬프게 하는 오해일는지도 모른다.
흔히 불국사를 조화적 이상미와 세련미를 보여주는 신라문화의 정수이며 완결편 이라고들 한다. 무엇이 그런 극찬을 받게 하는 것인지, 무지의 눈과 번잡한 마음을 싹 씻어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불국사를 다시 보자.
화려하고 장엄한 부처님의 세계를 땅위에 옮겨 세우려면 국민들의 합심과 그것을 뒤받침 해줄 만한 경제력, 곧 국력이 있어야한다.
삼국이 통일되어 나라가 안정되고 모든 문화가 골고루 발달하던 시기에 불국사는 만들어졌다.『삼국유사』에는 경덕왕10년(751),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하였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불국사고금창기」에 의하면 불국사는 법흥왕 15년(528)에 지어졌고, 문무왕 10년(670)에 지은 무설전에서 의상의 제자인 표훈이 머물렀다고 하는 등 불국사 창건에 관해『삼국유사』와 다른 기록을 보이지만, 이는 믿을만한 연대가 못된다.
다만 총2천여 칸에 이르는6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들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으로 보아 불국사의 규모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크게 불타 석축만 남게 되었다. 창건 후 650여년간 뭇 사람들에게 참된 부처님, 참된 아름다움의 세계로 기억되던 불국사는 그 뒤로 여러 차례 다시 세워지곤 하였다.
그러나 이미 전쟁으로 국력이 기운 뒤였고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도 퇴락의 길을 걷고 있던 까닭에 신라의 정신을 되살릴 길이 없었을 터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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