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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논어인물

저작시기 2004.10 | 등록일 2006.04.01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19페이지 | 가격 600원

소개글

논어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에 대한 조사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1. 孔子 공자
공자는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원래 송나라의 귀족이었으나 노로 망명하였다. 공자의 아버지 공흘은 자가 숙량이었다. 그러므로 보통 숙량흘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어머니 안징재는 공자를 낳을 당시 10대의 어린 소녀였다. 60세가 넘은 숙량흘은 안씨의 셋째 딸을 후처로 맞이한 것이다. 공자의 출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즉 어머니가 이산에 기도를 드려 공자를 낳았다고 한다. 그의 머리 가운데는 들어가고 나온 데가 있어 이름을 구(丘 : 언덕)라고 했다고 한다. 무인이었던 공자의 부친은 그가 세 살 때 돌아가시고, 모친은 그가 24세 때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어릴 적에 제기를 벌여놓고 예를 베푸는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이는 그가 어려서부터 비범한 자질을 보인 것이라고 하겠다. 그에게는 고정된 스승이 없었다. 그는 다만 타인의 장점을 본받고, 단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공은 "우리 선생님께서야 어디에서나 배우시지 않은 데가 있겠습니까? 또한 어찌 정해진 스승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이다. 공자는 19세 때 견관씨의 딸과 혼인하여 다음해 아들 리를 낳았다. 그는 결혼하던 해에 벼슬길에 나아갔다. 노나라 계씨의 창고 관리직을 맡은 그는 곡물출납을 성실히 수행하였다. 그리고 21세 때 가축을 관리하는 일을 맡에 그 번식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이미 30대 청년시절에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 노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이는 삼환씨였다. 이들은 국토를 채읍으로 삼고 군대와 가신을 길렀다. 이에 위협을 느낀 소공은 계평자를 제거하기 위해 군사를 동원하였다. 그러나 삼환씨의 단결된 무력에 패하여 그는 제나라로 도주하였다. 공자도 패배한 임금의 뒤를 쫓아 제나라에 갔다. 제나라 경공을 만난 공자는 정치의 요체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라고 말해 주목을 받기도 한다. 제나라에서의 관직 등용에 실패한 공자는 악장을 만나 순임금의 소를 듣고 큰 감명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 음악으로 인해 석달동안 고기맛을 잊었다고 한다. 공자가 다시 노나라에 돌아온 뒤에도 정치는 어지러워만 갔다. 임금인 정공은 아무런 실권이 없었고 계씨는 계씨대로 가신들의 발호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즉 가신 양화가 공산불유와 손잡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들의 반란은 계환자의 계략으로 간신히 수습되었다. 공자는 51세 때(B.C. 501년) 노나라 중도의 재에 임명되었다. 중도 고을은 그가 다스린지 1년만에 치안과 질서가 바로잡혀 다른 고을의 모범이 되었다고 한다. 다음 해 노나라 정공과 제나라 경공이 협곡에서 회맹하였다. 이 때 경공은 무력으로 정공을 위협했으나 공자는 그의 야비한 처사를 꾸짖었다. 이에 제나라는 사과하는 뜻에서 이전에 빼앗았던 세 고을을 노나라에게 되돌려 주었다고 한다.

참고 자료

교양으로 읽는 논어 - 박기봉 - 비봉출판사
새번역 논어 - 이수태 - 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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