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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역사속 두인물 원효와 의상

저작시기 2006.03 | 등록일 2006.03.31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초기 호국불교 원광과 자장에 의해여 그 정지작업이 어느정도 마무리 되었으나 여전히 고구려, 백제와의 영토전쟁으로 사회적으로 혼란한 상태에 있었으며 민생은 계속되는 전쟁의 와중에서 매우 고단하게 영위되던 때였다. 이러한 어려운 사회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승려들은 출세간적인 이상세계만을 추구하느라 중생들의 세간적인 고통을 외면하였으며 불교계는 왕실내지 귀족 중심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그 수용 면에서 왕실을 중심으로 한 귀족층과 일반서민층 사이에는 괴리가 있었다.

목차

1. 머릿말
2. 인물소개
ⅰ 시대배경
ⅱ 원효의 출생과 업적
ⅲ 의상의 출생과 업적
3. 두인물의 공통점과 차이점
4. 인식과 평가
ⅰ.원효의 화쟁사상과 요석공주에대해서
ⅱ.의상의 화엄종과 중앙집권체제에 대해서
5. 조사방법 및 자료출처

본문내용

시대배경
초기 호국불교 원광과 자장에 의해여 그 정지작업이 어느정도 마무리 되었으나 여전히 고구려, 백제와의 영토전쟁으로 사회적으로 혼란한 상태에 있었으며 민생은 계속되는 전쟁의 와중에서 매우 고단하게 영위되던 때였다. 이러한 어려운 사회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승려들은 출세간적인 이상세계만을 추구하느라 중생들의 세간적인 고통을 외면하였으며 불교계는 왕실내지 귀족 중심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그 수용 면에서 왕실을 중심으로 한 귀족층과 일반서민층 사이에는 괴리가 있었다.

원효대사(617~686)
서울의 한 지역중에 원효로라고 있으며, 이길로 이어지는 대교중에 원효대교라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그밖에도 을지문덕 장군을 기리기 위한 을지로,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세종로, 충무공 이순신 장순을 기리기 위한 충무로, 퇴계이황의 이름을 딴 퇴계로등 여러 가지 지명들이 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시는 분들인데 그 중 한명에 원효대사가 자리잡고 있다.
원효는 신라시대의 고승으로 성은 설(薛)씨 였으며 이름은 서당이었다. 원효는 그의 법명이다. 소년 시절에는 화랑의 무리에 속하였으나 도중에 깨달은 바가 있어 출가할 것을 결심하고 자기 집을 헐어 초개사라는 절을 세웠다. 648년 황룡사에서 중이 되어 각종 불전을 설렵하며 수도에 정진하였다. 일정한 스승을 모시고 경전을 공부하지 않고 타고난 총명으로 널리 전적을 설렵하여 한국불교사에 길이 남는 최대의 학자이자 사상가가 되었다. 기록에는 원효가 고구려로부터 망명하여 완산주에 있던 보덕을 스승으로 하였다는 설도 있으며, 시대적으로 보아 원광과 자장으로부터 불도를 배웠을 가능성이 많다.

참고 자료

『다시 찾는 우리역사』한영우, 경세원
『한국사 시민강좌』제4집
『한국불교 인물 사상사』불교신문사 편, 민족사
김교빈, 「한국철학 에세이」, 동녘, 2003.
선사열전, zen.buddhism.org
김갑동/ 대전대 인문학부 교수의 논문
소설가 한승원(원효를 읽고서) 카페
『화엄의 사상』카마타 시케오/ 한영조 옮김, 고려원
이기영, 의상만해연구원, www.man-hae.net
변밀운 , 「한국과 불교」, 초암출판사 , 2004.
인물로 보는 한국의 불교사상
예문동양사상연구원-한국의 사상가10人-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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