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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김해 양동리 고분군

저작시기 2006.01 | 등록일 2006.03.31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2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김해 양동리 고분군 보고서를 읽구 요약한 글입니다..
사진도 첨부되어 있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양동리 고분군은 김해의 중심가에서 서남쪽으로 약 4km 남짓 떨어져 있으며 마산으로 가는 남해고속도로변의 가곡 마을 뒤 야산에 위치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남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산 3번지 일대이다.
지금까지 조사결과 검출된 유구는 토광목관묘, 토광목곽묘, 수혈식석곽묘, 옹관묘, 유사식석목곽묘등 가야 분묘 총 548기이며 이들 유규에서 수습된 유물은 토기 2000점, 토제품 12점, 철기 3059점, 청동기 44점, 장신구 74점, 석제품 1점, 기타 2점 등 총 5192점에 이른다. 이 유적의 연대는 상한은 기원 전 2c말, 하한은 기원 후 5c로 추정되며 특히 기원 후 1c로부터 5c까지는 공백 없이 지속적으로 조상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야 묘제는 시기별로 크게 구분해보면 토광목관묘-> 토광목곽묘-> 수혈식석곽묘의 단계로 변화, 발전되어 갔다. 토광목관묘를 통하여서는 조기 가야의 개시시점이 기원 전 1c초임을 추구해 볼 수 있고 또한 이 시기의 피장자의 신분이 천군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되어 이 시기 가야 사회의 정치적 성장까지도 추구해 볼 수 있다. 이 유구는 종래의 연대관인 기원후 3세기 말보다 1c나 앞서는 2c 후반대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수혈식석곽묘는 등장시기 또는 초기 수혈식 석곽묘라고 판단되는 유구가 확인되어 수혈식석곽묘의 정확한 계보와 등장시기를 파악하게 되었다. 즉 양동리 수혈식석곽묘는 바로 전단계의 묘제인 토광목곽묘에서 발전한 것이며 그 등장 시기는 기원 후 4c 중엽을 시작으로 4c 후반대로 파악된다.
양동리 초기 석곽묘의 구조적 특징을 보면 보강토 대신 석재를 이용하여 벽석을 축조하고 다시 목곽을 설치한 상태로 이중곽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고 전형적인 석곽묘가 활석으로 된 개석을 가졌으나 등장 또는 초기의 수혈식석관묘는 목개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도 가야묘제에서 묘실 내부를 불태우는 특수한 장의가 존재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유물에서 토기는 각종 가야토기의 확인은 물론 가야토기의 변화 발전상, 특히 소위 와질토기에서 경질토기로 변해가는 과정이 확인된다. 철기에 있어서는 다양한 무기 갑주 마구 이기 및 농공구류 등이 새로운 자료와 함께 출토되었는데 이는 당시의 사회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양동리의 각종 토광목곽묘에 풍부하게 매납되어 있는 판상철부형철정은 우수한 가야 철기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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