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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 향토사] 칠곡군 현장 답사 보고서

저작시기 1999.06 | 등록일 2006.03.28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102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발품 팔면서 부지런히 모았던 칠곡군 자료(102장 분량)

목차

Ⅰ.칠곡군 답사의 과정
Ⅱ.칠곡의 연혁
Ⅲ.지역의 특성
Ⅳ.역사속의 칠곡
Ⅴ.칠곡의 인물

본문내용

1.고대사회와 칠곡
칠곡군에는 구석기중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석적면 중리에서 구석기 중기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이 유적에는 르발루아첨기 (Levallois 尖器)․돌망치․찍개등이 출토되었다. 신석기 시대에도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나 신석기 시대 유물이나 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반면에 청동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은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유적과 유물을 토대로 볼 때 삼한시대 진한의 군미국(軍彌國)과 변한(弁韓)의 변군미국(弁軍彌國)이 이곳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비정되고 있다. 이들 소국의 존재형태나 행방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찍부터 칠곡지역에는 백제와 신라의 영토확장 정책에 따른 양국의 각축장이 되었고 결국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2.신라시대의 칠곡
신라시대 칠곡지역은 본래 사동화현斯同火縣(현仁同일대)혹은․대목현(大木縣,현 苦木일대)․팔거리현(八居里縣,혹은 仁里,현 대구시 북구 漆谷일대)이 설치되어 있었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게 됨에 따라 막대한 영토와 인구를 지배하게 되어 685년(신문왕5)에 새로운 지방행정구역을 개편 9주5소경 제도를 제정하였다. 이때 약목면을 제외한 칠곡군 일부는 량주(良州)에 소속되고, 약목면을 포함한 일부는 강주(康州)에 소속되었다. 양주는 중심이 양산이고 팔공산 이남의 경북지역이 이에 편입되었으며,강주는 그 중심이진주로 양주의 서쪽일대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757년(경덕왕16년)에 사동화현을 壽同縣, 대목현을 谿子縣, 팔거리현을 八里縣으로 개칭되었지만 여전히 수동현․계자현은 강주 성산군(현 상주), 팔리현은 양주 수창군(현 대구 수성구)의 영현이 되었다. 수동현은 경덕왕때 다시 인동현으로 고치고 별호를 옥산이라 하였다.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 왕건의 세력이 경쟁적으로 이지역의 공략을위해 노력하였다. 견훤은927년(태조10) 신라를 공격하고 귀환하면서 계자현의 들판에 쌓인 곡물을 불태웠다고 한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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