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ROTC관련과목]조조에 대하여

저작시기 1997.01 | 등록일 2006.03.27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700원

소개글

ROTC관련과목인 리더쉽 시간에 만든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조조에 대하여.

2. 조조에 대한 현대의 평가.

3. 조조가 리더로 성공한 요인.
1). 호방함.
2). 엄격함.
3). 인재등용 중시.
4). 전략적.

4.“성공한 리더”로서의 조조

<참 고>

본문내용

1. 조조에 대하여.

조조는 한·위 시기에 패국 초(지금의 안휘성 박주) 출신으로, 자는 맹덕이고 어릴 때 이름은 아만이다. ≪삼국지·위지≫「무제기」에 의하면, 그의 출생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알 수 없고, 단지 그의 부친 조숭은 본래의 성이 하후였으나 후에 환관 조등의 양자로 들어갔기 때문에 성을 조씨로 바꾸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다. 조조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면서도 다소 방탕하여, 사냥과 가무를 좋아하고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했다.
조조는 뛰어난 재주와 웅대한 지략을 가졌기 때문에 당시에 명성이 자자하던 학자 허모는 조조를 일러, "치세에는 유능한 신하가 될 것이고, 난세에는 간웅이 될 것이다(치세지 능신 난세지 간웅)."고 예언했다. 그러한 조조는 동한 말기(155~220)에 환제·영제·소제·헌제의 4대 황제를 거치면서 살았다.
이러한 어지러운 시대적 상황 하에서 조조와 같은 영웅이 출현하여 전란을 종식시켜 백성을 구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요 역사적 필연이었다. 당시에 일부 지식인들은 부패한 문벌세력의 전횡에 대응하여 국정을 쇄신하려다 대부분 투옥되거나 옥중에서 사망하였으며, 요행히 살아남은 사람들도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당고지화`이다. 조조는 정치무대에 등장하자마자 곧바로 문벌세력에 맞서 완강히 투쟁하였다.
동한 영제 희평 3년(174), 조조는 20세에 낙양북부위에 올랐다가 얼마 안 있어 돈구(지금의 하남성 준현 서쪽) 현령으로 전임되었다. 중평 원년(184)에 그는 기도위에 임명되어 영천(지금의 하남성 우현)의 파재가 이끄는 황건적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움으로써 제남상으로 승진하였다.
중평 4년(187)에 그는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그 이듬해 다시 전군교위에 임명되어 병권을 회복하고 낙양으로 돌아왔다. 이때 동한정권은 황건적의 난으로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중평 6년(188), 동탁이 조정에서 권력을 전횡하자 조조는 낙양으로 내려가서 진류(지금의 남개봉 동남)에서 가산을 털어 사병 5000명을 모집하였다.
동한 헌제 초평 원년(190) 봄, 관동의 각 군현에서 동탁을 성토하기 위하여 군대를 일으키고, 발해태수 원소를 맹주로 삼았다. 이때 조조는 동탁 토벌 연합군에 가담하여 분무장군에 임명되었다.

참고 자료

삼국지연의.
중국의 어제와 오늘.
한 권으로 보는 삼국지.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