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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극]강릉관노가면극에 관하여

저작시기 2005.10 | 등록일 2006.03.25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4페이지 | 가격 700원

소개글

강릉관노가면극의 유래와 그 특징 및 각 과장별 해설과 미지막으로 강릉관노가면극의 의의를 설명한 글이다.

목차

1. 강릉관노가면극의 유래

2. 강릉관노가면극의 이해
(1) 특징
(2) 과장별 해설

3. 강릉관노가면극의 의의
* 참고문헌

본문내용

강릉관노가면극이 마을 축제인 농경의식(農耕儀式)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은 강릉의 고대 지역인 예국(濊國)의 무천의식(舞天儀式)에서 유래한다고 할 수 있다. 강릉관노가면극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부락제(部落祭)에서 연희(演戱)되어 왔음이 여러 문헌을 통해알 수 있는 기록들이 있다. 고려사(高麗史 918˜1392)에 고려 태조 왕건(918˜943)때 강릉 사람 왕순식이 대관령에서 제사하였다는 기록에서 시원를 찾을 수 있으며,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1454˜1493)의「추강냉화(秋江冷話)」에도 영동지역 사람들은 음력 4월˜5월에 택일(擇日)하여 산신제(山神祭)를 지내고 사흘동안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겼다고 했다. 그리고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許筠)의 문집에도 대관령산신찬병서라는 글이 있는데 계묘년(癸卯年-1603) 5월에 잡희(雜戱)를 베풀어 신(神)을 즐겁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릉의 향토지인 임영지(臨瀛誌)에 무당과 굿과 창우(倡優)들에 의하여 놀이가 계속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관노가면극의 긴 역사를 알 수 있다.
강릉관노가면극은 1909년에 폐지되었던 것을 김동하(金東夏), 차형원(車亨元)의 고증으로 1967년 1월 16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김동하,차형원옹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후 강릉여고, 강릉교육대학, 관동대학(교)에서 이어오다가 1985년 강릉시 유천동 주민들에 의하여 70년만에 옛 본래의 모습인 민간전승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으며, 1993년 8월 2일 권영하(權寧夏)님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 7월 22일 김종군(金種群)님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강릉관노가면극에 대한 학계 및 일반인들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강릉관노가면극보존회를 중심으로 초등학교(경포,포남), 중학교(율곡,관동), 고등학교(강릉농공), 대학교(관동대,강릉대), 일반(강릉문화원 임영회, 주문진 여성회관, 강릉시 여성회관)등에서도 착실히 계승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참고 자료

두창구, 『강릉지역의 전통문화 연구』(국학자료원, 2000)
장정룡, 『강원도 민속연구』(국학자료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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