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인문학]최치원의 생애와 문학사상

저작시기 2005.10 | 등록일 2006.03.15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34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고운 최치원은 신라 한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나라 한문학의 開祖로 일컬어진다. 당나라 賓貢科에 급제한 신라인이 근 60여 명에 이르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존재로서, 당나라 말기인 희종 때 黃巢 의 반란이 일어나자, 그는 고변이 이끄는 관군의 군막 서기로 종군하여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백일하에 너를 능지처참할 것을 생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땅 속의 귀신들도 이미 암암리에 너를 죽이기로 의논하였다”고 논하여, 황소가 저도 모르게 상 아래로 내려와 무릎 꿇게 했다는 저 유명한 <檄黃巢書>를 지어 문학의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그는 당나라 사람이 아닌 외국인으로서 진출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고 귀국하게 되었다. 그 사정은 “해내의 누가 해외 사람을 가엾게 여기랴/묻노라, 어느 길이 내가 갈 나루로 통하는가”라고 읊은 <陳情上太尉>와 “천한 땅에 태어난 것이 스스로 부끄러워/사람들에게 버림 받아도 참고 견디네”라고 읊은 <蜀葵花>에 절실하게 드러나 있다.
그가 높은 명성을 얻는데는 뛰어난 재능에다가 남다른 각오와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공부할 때 머리털을 천장에 잡아매고 자신의 허벅지를 송곳으로 찔러가면서 이른바 ‘懸刺’를 일삼으면서 정진하였던 것이다.
그렇듯 공부에 정진하며 신라의 구질서를 거부하고 다가올 사회에 대한 기대를 품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실천적으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그는 어느 날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최치원이 택했던 이 같은 삶의 방식을 어떻게 평가하고 이해해야 하는가? 역사는 냉엄한 것이지만, 우리는 당대 사회의 최고 지식인이라 할 최치원이 겪었던 고뇌와 갈등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비록 그가 걸었던 길이 역사의 향방과 어긋났을지라도 말이다. 물론 그는 역사의 대세를 거꾸로 뒤집으려고 하지는 않았고, 다가올 사회를 의식하고 따르고자 했지만, 실천과 행동이 뒷받침되지 못하였다. 의식과 행동 사이의 괴리, 그리고 그 모순에 따른 갈등과 고뇌는 최치원의 불우하고 고독했던 삶을 극명하게 대변해 주는 말이다.
(중략)
이 논문의 취지는 이처럼 최치원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생애, 그리고 그의 사상과 문학세계와 그의 작품을 분석해 봄으로써 그의 문학이 갖는 의미와 오늘날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잠시 조명해 보는 계기로 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시대적 배경
1) 남북국시대
2) 신라하대의 혼란
3) 신라와 당과의 관계
4) 신라에서 본 당대 문인의 역할
2. 최치원의 생애
3. 최치원의 사상
1) 역사관
2) 종교관
⑴ 유학관
⑵ 불교관
⑶ 도교관
⑷ 三敎混融의 종교관
3) 개혁사상
⑴ 유교적 이상정치와 복고개혁
⑵ 비판적 현실인식과 개혁의지
⑶ 시무십여조와 四海一家的 시국관
4. 문학세계
5. 작품감상 및 분석
1) 한시
2) 전기소설 [최치원전]
3) 산문 [산문 작품 원문]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4) 신라에서 본 당대 문인의 역할
최치원은 육두품지식인으로서 국제적으로 활동해 진출하고자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그는 당나라의 과거에 급제하고도 한동안 표수현의 縣尉생활을 지내는 등 불우한 여건에 처해 있었다. 뒤에 博學宏詞科에 응시하려했던 것도 그런 생활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계원필경』의 상당부분의 글이 고병을 위해 대필한 글이라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최치원의 문학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느냐하는 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그는 문학이란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남을 대신해 아름다운 글을 써주는 것이 문학의 기능이면서 목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최치원은 당으로부터 귀국하자 곧 헌강왕께 『계원필경』을 올렸다. 헌강왕대라고 하면 신라의 문물 흥성이 그 극에 달했던때이지만 지방호족이 반란을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그때 『계원필경』을 올린 것은 당 과거제도이 습속이기도 하겠지만, 다의 혼란으로부터 얻은 자기의 경험을 신라의 집권층에서 거울삼기를 바라는 희망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실용적인 문장을 통해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신라에서는 통용되지 않았다.
최치원은 화려한 수사를 통해서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실용적인 가치를 지니는 글을 만들어내며 겉으로 표현되기 힘든 심오한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문학이라고 생각했다. 이 셋은 최치원의 문학사상이자 신라말 문인의 문학사상이기도 했다.
최치원은 국제적으로 활동해 진출하고자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데, 특히 신라말 육두품 지식인의 대표적 지성이라는 점에서 羅末麗初 사회변동과 관련해 더욱 관심을 끌기도 했다. 사상적으로 문학의 기능과 가치에 대한 최치원읜 고민은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문학사상을 이해하는 핵심도 바로 이러한 최치원의 고민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데 있다.

참고 자료

곽승훈, 『최치원의 중국사 탐구와 사산비명 찬술』(한국사학, 2005)
권호, 『고전수필개론』(동문선, 1998)
김경수․김성용, 『한국고전비평1』(역락, 1999)
김상홍외, 『한국문학사상사』(계명, 1999)
김성룡, 『한국문학사상사1』(이회, 2004)
김진영, 『고전작가의 풍모와 문학』(경희대학교출판국, 2004)
김진영외, 『한국 고전문학 입문』(집문당, 1996)
김희보, 『한국문학 앤솔러지(1)』(가람, 1999)
민족문학사연구소, 『한국고전문학작가론』(소명, 1998)
소인호, 『한국 전기소설사 연구』(집문당, 2005)
손종섭, 『다시 옛 시정을 더듬어』(태학사, 2003)
성락희, 『최치원의 시정신 연구』(관동출판사, 1990)
이종묵,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태학사, 2002)
조동일, 『한국문학통사1』(지식 산업사, 2001)
진경환․우웅순, 『고전문학 이야기주머니』(녹두, 1994)
최영성, 『최치원의 철학사상』(아세아문화사, 2001)
한국사학회․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 『신라 최고의 사상가 최치원 탐구』(주류성, 2001)
한국한시학회, 『한국한시작가연구』(태학사, 1995)

[참고 논문]
박명준, 『신라말의 정치사회와 최치원』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