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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이승만 정권의 등장과 정당정치의 확장과 분열

저작시기 2006.03 | 등록일 2006.03.14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에이뿔 받은 리포트입니다!!

목차

1. 이승만 정권의 등장
1) 머리말
2)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
3) 단정 수립 전·후 각 정파의 활동
a. 이승만과 한민당
b. 김구 · 김규식의 임정계열 세력
c. 좌익계열(남조선 노동당)
4) 단정 수립과 관련된 주요사건
a. 제주 4·3 항쟁
b. 여순 사건

2. 정당정치의 도입: 미군정
1) 머리말
2) 국내·외 환경
3) 정당관련 제도와 정책
4) 정당의 실태와 동태
5) 정치적 갈등구조

3. 정당정치의 한계: 이승만 정권
1) 머리말
2) 국내·외 환경
3) 정당관련 제도와 정책
4) 정당의 실태와 동태
5) 정치적 갈등구조

본문내용

1. 이승만 정권의 등장


1) 머리말

1948년 8월 15일 건설된 대한민국은 그 수립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역사상 최초로 보통선거로 수립되었고, 이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이념적 기초가 되었다. 미군정에 의해 이식된 자유민주주의의 제도화는 보통선거제의 도입이 핵심이었고, 3권 분립, 의회제 민주주의 등 근대국가의 기본 모델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미군정이 강조한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의 대결이라는 이데올로기 대립의 맥락에서 이뤄졌으며, 이는 대한민국 체제의 기초를 이루었다.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의 결렬로 김구·김규식 등의 임정 세력과 좌익이 불참한 가운데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총선거가 단독으로 치러졌다. 남측만의 단독정부는 수립 전·후 여러 어려움에 봉착해있었고, 많은 도전을 받았다. 여기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과 대한민국 수립과 관련해 각 정파의 활동과 반응, 주요 사건들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2)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

1946년 말, 좌우익의 온건세력을 포섭한 미군정의 좌우합작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이와 함께 우익들의 신탁통치 반대, 단독정부 수립요구의 강도가 높아졌다. 미국은 남한에서의 좌익세력에 대한 사회적·정치적인 불만을 견제를 하기 위해 법과 질서 유지를 최우선으로 하여 경찰대 조직과 경비대 창설, 민족청년당 등 준군사단체를 조직하였으며, 이에 따라 1946년 중순부터 좌우익 청년단체들 간의 테러행위, 게릴라전이 격렬히 전개되었다. 1947년 3월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면서 한반도에 통일정부가 성립되기 어렵게 되었고 남과 북은 실질적으로 서로의 정권을 세우기 위한 준비에 착수하였다. 우선 미국은 남한을 계속 군정 상태로 둘 수 없게 되어 점차 행정권을 한국인에게 이양하는 절차를 밟아갔다. 1947년 6월 3일에는 과도입법의원과 법원을 합쳐 종래의 미군정청이 완전한 민정이양을 위한 과도기적인 집행부인, “남조선 과도정부”로 개칭되었다. 그리하여 외형적으로는 미군정체제에서 한국인에 의한 3권 분립의 민정체제는 어느 정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미국과 소련은 1947년 5월 2일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하였으나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당초 미소공위는 한국의 정당·사회단체 대표와 협의하여 정부수립을 논의하기로 했었는데 북한에서는 1300만 명을 대변하는 3개 정당 35개 사회단체들이 협의 대상을 신청하였으며, 남한에서는 400개 이상의 정당이 등록, 당원 숫자가 6200만 명으로 남한 인구의 3배에 이르렀으므로 소련은 반탁위원회에 속한 8개 정당을 제외할 것을 주장하였다. 7월에 이르면 미소공위는 사실상 완전히 끝난 상태였고 결국 미군정은 미소공동위원회에서의 합의 도출은 불가능 하다고 판단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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