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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대한제국과 대한국국제

저작시기 2006.03 | 등록일 2006.03.14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900원

소개글

조선말 고종황제의 대한제국과 대한국국제 선포의 배경과 주된 내용, 역사적인 의미 등을 정리한 레폿입니다.

목차

Ⅰ. 대한 제국 선포의 역사적, 사회적인 배경
Ⅱ. 대한국국제
<대한국 국제의 내용>
Ⅲ. 대한제국
Ⅳ. 마무리

본문내용

Ⅰ. 대한 제국 선포의 역사적, 사회적인 배경

1894년은 갑오개혁이 일어난 해이다. 갑오개혁은 그 해 6월 일본군에 의해 경복궁이 점령됨에 따라서 일본의 입김이 불어넣어진 개혁이었다. 갑오정권에는 1880년대 개화정책에 관여하던 개화파 김홍집․김윤식 등과 개화정책을 통해 성장한 김가진․유길준 등이 참여하였으며, 이들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지지해 줄 민중 세력이 성숙하지 못했었고, 일본군의 진주 속에서 겨우 개혁의 고삐를 잡을 수 있었으므로 이들의 개혁은 자주적 근대화에 큰 손상을 입고 출발하였다.
물론 갑오개혁은 조선의 근대화를 외치던 개화 사상가들이 일본의 지원을 받아서 행한 것이었다. 개화파는 근대자본주의의 성립을 바라면서도 제국주의가 만들어놓은 새로운 지배질서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갑오개혁이 국가주권의 일본 종속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고 대비책 없었다. 그들의 주관적 애국사상은 결과적으로 제국주의 침략의 발판으로 바뀔 수 있었으며,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이 한계였다. 갑오개혁은 조선이 근대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겉모습을 담고 있었으나, 개혁을 뒷받침해야 할 민중을 소외시키고 일본에만 의지했다. 이는 곧 일본에 정치적으로 예속되는 결과를 낳았으며,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숨기면서 민족의 자존심마저 버리는 한계를 드러냈다. 그 결과 반일 의병봉기가 끊임없이 일어났고 1896년 2월 11일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면서 이완용 등이 친러내각을 세우게 되었고, 이에 친일 갑오정권은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갑오정권에 참여했던 개화파 인사들과 관료들은 살해되거나, 일본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1895년 8월에는 일본인들이 몰래 침입하여 왕후 민씨를 무참히 살해하는 을미사변이 발생하였다. 을미사변의 소식은 국내외적으로 많은 파문을 몰고 왔다. 국제적으로 일본의 위신이 추락되었음은 물론, 조선내에서는 을미사변으로 인한 국민의 적개심이 폭발하여 반일의병운동이 급속하게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파천(俄館播遷)을 하게 된 것도 사실은 일본의 과도한 내정간섭과 을미사변의 만행에 대한 반작용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을미사변의 객관적 조건은 청일전쟁 이후 러․일 양국 사이에 전개된 동아시아에서의 마찰이라고 할 수 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장본인은 어디까지나 일본정부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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