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한국문화유산]성주의 연혁과 성산동 고분군

저작시기 2005.10 | 등록일 2006.03.12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13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팀보고서

목차

1. 성주의 연혁
1> 성주
① 자연환경
② 인구
③ 산업·교통
④ 유적유물 관광
⑤ 교육·문화
2> 연혁

2. 성산동 고분군
1> 성산가야
2> 고분
① 고분의 분포지역
② 고분의 입지조건
③ 고분의 구조형식
(1) 토광묘(土壙墓) - 널무덤
(2) 옹관묘(甕棺墓) - 독널무덤
(3) 석곽묘(石槨墓) - 덧널무덤
(4) 석실묘 (石室墓) - 돌방무덤
3> 성산동 고분군
참고문헌

본문내용

2> 연혁
성주군에서는 신석기·청동기 시대의 유물 신석기 시대 - 자르개 2점, 다각면원구 1점
청동기 시대 - 白川과 伊川 연변의 지석묘
이 발견되고 있어 일찍부터 소국(小國)의 바탕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주는 6가야 중 벽진가야(碧珍加耶)로 가야연맹의 중심국 중의 하나였다. 신라가 가야 지역에 진출함에 따라 신라의 세력권에 들게 되어 벽진군(碧珍郡) 또는 본피현(本彼縣)이 설치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신안현(新安縣)으로 개칭, 성산군(星山郡:지금의 고령군 성산면 일대의 加利縣)의 영현이 되었다. 나말여초에 이 지방 호족인 이총언(李悤言)이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공으로 인해 940년(태조 23)에 경산부(京山府)로 승격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고령군을 속군으로 약목(若木)·인동(仁同)·지례(知禮)·가리(加利)·팔거(八筥)·김산(金山)·황간(黃澗)·관성(管城)·안읍(安邑)·양산(陽山)·이산(利山)·대구(大丘)·화원(花園)·하빈(河賓) 등 14개현을 속현으로 거느린 대읍이었다. 1295년(충렬왕 21)에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 1308년(충렬왕 34)에 성주목으로 승격했으며, 1310년(충선왕 2)에는 경산부로 강등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태종대의 군현제 개편 때 성주목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1614~23년에 신안현으로, 1631~40년에 성산현으로, 1736~45년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지방제도 개편에 의해 1895년에 대구부 성주군, 1896년에 경상북도 성주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두입지(斗入地)였던 인곡면·운라면·흑수면·도장면·소야면·가현면·덕곡면·노다면·다산면이 고령군으로 비입지(飛入地)였던 노장곡면이 현풍군으로 두입지 증산면이 지례군으로 이관됨으로써 많은 지역을 상실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용산면·남산면·북산면·본아면이 성주면으로 선남면·화곡면·산남면·오도면이 선남면으로, 대동면·두릉면이 용두면으로, 조곡면·초곡면이 성암면으로, 지사면·법산면이 지사면으로, 대리면·청파면이 청파면으로, 운곡면·명암면이 벽진면으로 유곡면·초전면이 초전면으로 유동면·당소면·망성면이 월항면으로 통합되고 신곡면은 김천군에 넘겨주었다. 1934년에 용두면·성암면을 용암면으로 지사면·청파면을 수륜면으로 통합·개칭하고, 1979년에는 성주면을 읍으로 승격하여 1개읍 9개면이 되었다. 1983년선남면 노석동이 칠곡군으로 이관되고 고령군 성동이 수륜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각 동을 리로 개정하였고, 1989년 용암면 명포ㆍ장학리가 선남면에 편입되고 월항면 어산리가 초전면에 편제되었다.

2. 성산동 고분군
1> 성산가야(星山伽倻)
철기시대 형성된 소국을 모체로 하여 성주에는 6가야의 하나인 성산가야(星山伽倻)가 형성되게 된다. 성산가야에 대한 기록으로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오가야(五伽倻)조에 실려 있다. 이를 통해 보면

참고 자료

없음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