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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경주 답사

저작시기 2005.11 | 등록일 2006.03.10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23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이 레포트는 제가 경주 일대를 답사하고 그곳의 유래와 특색을 서술하고
또한 답사에서 느낀 점을 적었습니다
답사 수업을 듣거나 경주 일대 답사를 하시는 분에게 조금의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1. 분황사
2. 황룡사지
3. 신라요
4. 불국사
5. 장항리 사지
6. 기림사
7. 문무대왕릉
8. 감은 사지
답사를 마무리 하며

본문내용

1. 분황사
선덕여왕 3년(634년)에 지어진 절로서, 원효대사가 거주하면서 화엄경소를 쓴 곳이다. 솔거
가 그린 관음보살상, 경덕왕 14년(755년)에 불상 주조의 대가인 강고 내말이 만든 약사여래상이 있었다. 선덕여왕의 권유로 자장법사도 오래 머물렀으며, 원효의 아들인 설총은 원효대사가 돌아가신 후 아버님의 소상을 만들어 모셨고 이 소상은 고려후기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원효가 이곳에서 해동종을 완성했다고 하여 해동종을 분황종이라고도 한다. 이 절은 평지 일탑 일금당의 가람배치로서 다른 사찰에서 보듯 중문, 탑, 금당을 중심으로 회랑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나 절터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확실치는 않다.
통일신라 이전에 세운 모전탑으로 원형은 5층인지 7층인지 9층인지 알 수 없으나 그 중에
서 지금은 3층(국보30호)만 남아있다. 신라탑은 전탑양식이 유행하여 백제의 미륵사지 목탑구조 모방 전탑과 결합하여 통일신라 석탑의 정형을 이루었다.통일산라의 모전탑 및 전탑은 안동, 의성, 제천 등지에 남아있다

2. 황룡사지
사적 제6호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구황동)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1년(553)에 왕명으로 창건하였으며 진흥왕 35년(571)에 신라 최대의 불상인 장육존상을 모셨다. 그리고 선덕여왕 11년(615)에는 백제의 기술자인 아비지에 의해 높이가 약 80m인 동양 최고의 구층목탑이 완성되어 신라 호국사찰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 고종 25년(1238)에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어 그 유지만 오늘날까지 남아 있었다 그 후 1976년부터 8년간에 걸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황룡사의 가람배치가 과거 일제때에 발표되었던 1탑 3금당의 정방형에 가까운 형태에다 담장 내부의 너비가 약 25,000평에 달하고 있음을 밝히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그밖의 많은 건물터를 확인함으로써 당시의 웅장했던 대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40,000여점에 달하는 유물을 수습함으로써 신라시대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를 획득하게 되었다. 지금의 모습은 발굴조사 결과 나타난 건물터를 그대로 정비한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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