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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건축]경복궁 답사 보고서

저작시기 2005.11 | 등록일 2006.03.02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13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교수님과 경복궁 답사후에 쓴 보고서라 자세하고 사진도 많이 실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는 레포트 입니다.

목차

낯선 유적지 답사의 시작 (光化門의 도착)
●景福宮 답사전 (景福宮의 역사)
●조선시대 최고의 궁궐전각, 勤政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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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답사 시작전 교수님께서는 경복궁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물론 조선시대에 도읍지로 정해진 서울이라는 곳에 처음 지은 궁이라는 것, 그리고 무학대사의 도움(풍수지리설)에 근거하여 도읍지로 정하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동안 몰랐던 부분이 더 많았던 것 같았다.
경복궁은 흔히 우리가 알듯이 왕이 사는 곳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사는 거주의 개념은 분명히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즉, 국왕과 식구들이 생활도 하지만 국정이 이뤄지는 정치적 기능을, 즉, 2가지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경복궁의 기원은 태조 이성계가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후 1395년에 창건한 정궁으로, 태조는 당시 고려의 수도인 개경에서 수도를 옮겼는데 이는 고려시대의 세력기반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왕자의 난 등 안좋은 일이 여러차례 있자 다시 개경으로 옮겼다가 조선 태종때 다시 돌아온것이 바로 현재의 서울이자 경복궁이다. 당시의 일화에 따르면 무학대사는 현재의 왕십리에 궁궐터를 잡을려 하다, 농부의 조언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이는 배산임수라는 풍수지리설에 가장 맞는 장소로 그당시의 풍습을 나타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양궐체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집(궁궐)이 두 개를 의미하며, 이는 천재지변, 화재, 왜란등의 대비하여 피난거처가 필요한 때를 생각한 방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태종때 창덕궁을 지은 것도 이런 연유라고 보면 된다. 경복궁은 조선 전기의 법궁과 본궁으로서 역할을 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창덕궁(법궁)과 경희궁(제2궁)이 경복궁을 대신하였다고 보면 된다. 현재의 경복궁은 원래의 형태는 아니고 조선 후기 임진왜란으로 타버린 궁궐을 고종때 다시 세운 것으로, 그후에도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곳이 파괴가 되었으나 여러차례의 노력 끝에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현재에도 원 모습을 복원하기 위하여 계속 공사가 진행되는 것은 물론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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