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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종교사]한국사에서 종교와 사회의 상호 관계

저작시기 2005.02 | 등록일 2006.02.22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38페이지 | 가격 3,0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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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序言
Ⅱ. 종교의 정의
1. 실체적 정의
2. 기능적 정의
Ⅲ. 종교에 관한 여러 시각들
1. 마르크스의 종교관
2. 베버의 종교관
3. 뒤르켐의 관점
Ⅳ. 종교와 사회의 관계, 역할
1. 전통적 이론에 대한 검토
2. 종교의 사회적 위상과 사회 체제에 대한 자세
1) 미분화 상태에서 종교와 정치
2) 세계 종교와 종교의 예속
Ⅴ. 한국사에서 종교의 사회적 위치 -중앙권력과 종교의 관계
1. 신라에 있어서 종교의 역할
1) 불교 수용의 문제
2) 佛敎 儀式의 문제
3)중앙권력과 불교의 문제
4) 中代 華嚴思想과 王權
2. 조선시대의 유교와 정치
1) 의례에 관한 검토
2) 유교적 치국
Ⅵ. 한국사에서 종교의 역할 -結言을 대신하여

본문내용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면 분명히 한국사에서의 종교는 중앙권력의 정당화의 수단으로 작용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불교의 轉輪聖王, 慈藏의 刹帝利種說, 화엄종과 전제왕권의 관계는 신라왕권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유교는 조선의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밀착하면서 조선왕조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從法秩序를 유지하는데 주된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본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정토신앙이나 미륵신앙 등의 구원신앙은 현실의 고통을 환상으로 포장해 잊게하는 아편의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종교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은 모두 종교가 사회 이데올로기 정당화, 혹은 사회의 통합에 역할한다는 점에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사에서 종교가 수행한 역할이 단순히 사회를 포장하고 정당화시켜, 지배층의 피지배층을 착취한 것뿐이라는 설명은 옳지 않다. 베버나 뒤르켐의 경우 종교가 사회를 정당화한다는 기능은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회변동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듯이 한국사에서의 종교 역시 사회변동의 한 단초를 제공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사회 변동이라는 말의 정의를 단순히 현대적인 시각에서 ‘근대화’라는 것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사회 이데올로기의 정당화가 사회의 정체라고 설명하는 것은 잘못이다. 분명 신라가 연맹왕국에서 고대 중앙집권국가로 변화하는 것도 일종의 사회 변동이라 할 수 있으며, 고려의 귀족정치사회에서 조선의 관료정치로 변화하는 것도 사회 변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의 변동 한 가운데 불교와 유교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은 앞장에서 서술한 바와 같다. 또한 위의 생각을 차치하고 근대화라는 시각에서 봤을 때도 장기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시의 사회를 근대화로 가는 단계 중의 하나로 설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만하임의 설명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면 하급 계층의 종교에 대한 사유는 정당화에의 동조보다 현실돌파라는 성격이 강하다. 미륵신앙의 경우 한국사에서 유행한 미륵에 대한 신앙은 미륵하생신앙으로써 현실의 고통을 타파하는 돌파구로 신봉되었고, 정토신앙의 경우 염불을 통한 수행을 통해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으로 믿어졌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에서 근대화가 자연적으로 일어나지 못했다는 부분에서는 한국사 속에서 나타나는 종교의 부정적 기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조선시대는 유교로서 중세 봉건사회의 체제를 더욱 강화하면서 유교 자체가 가지는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자체적으로 근대화할 수 있는 힘을 잃고 말았고, 서구 열강과 일본에게 침탈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불교는 현실부정적인 성격이 강했고, 유교는 현실에 대한 적극적 참여보다는 안정에 더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과학, 수학 등의 실용적 학문의 발달에는 장애요소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베버가 가졌던 중국의 불교와 유교에 대한 시각이 날카로웠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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