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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발해에 관하여

저작시기 2006.02 | 등록일 2006.02.22 워드파일 MS 워드 (doc) | 12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발해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들을 다 다룬 글입니다.

목차

1.발해의 건국
2.발해의 발전과정
3.발해의 정치
- 행정제도
- 군사제도
4.발해의 문화
- 고구려,당나라,말갈,고유문화
5.발해의 사회,경제
6.발해의 대외관계
- 일본과의 관계
- 당나라와의 관계
- 통일신라와의 관계
7.발해의 멸망
8.발해건국의 의의

본문내용

1.발해의 건국
696년 영주에서 이진충의 난이 일어난다.이들 지역은 여러 민족이 생활하는 곳이라,한족에 대한 반발심이 많았다.이곳은 강제 이주된 고구려인 3만여 호가 살고 있었으며 대당 전쟁에 참가한 고구려 동북 지역 사람들도 포로나 노예로 잡혀와 있는 사람이 많았다.당시 이진충의 난은 성공적이었고,당을 압박하는 분위기였다.고구려인 부대를 지휘한 대 걸걸중상(대조영의 아버지)과 대조영,말갈 인인 걸사비우가 이 반란에 참가한다.그들은 요동 지역을 근거지로 삼으려고 했으나,이진충의 난 실패로 빠르게 동으로 이동하면서 각지에 흩어진 고구려 인을 수습하였다.
그들은 고구려.당 전쟁의 피해가 없었던 당과 멀리 떨어진 만주의 동북부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당나라는 그들의 후환을 없애기 위해,이진충의 난을 진압한 후 투항한 거란족 출신 이해고를 대장으로 수십만의 병력을 이끌고 이들을 추적한다.처음으로 전투를 개시한 부대는 걸사비 우가 이끄는 말갈 인 부대였는데,병력의 엄청난 차이로 부대는 괴멸되고 추장인 걸사 비우는 전사한다.이런 와중에 대조영의 아버지 대걸걸중상도 죽어,대조영은 혼자서 패전된 말갈인 부대를 수습하고,전열을 보강해 당과 일대 격전을 벌인다
925년부터 고려로 망명하는 발해인들이 증가하였다.
이런 시기에 발해의 중앙정부는 강력한 요나라의 등장으로 국가 존립이 위험에 처하자,여러 나라에 사신을 보내고 고려와 정략적 혼인을 하는등 외교적으로 노력을 하지만 막상 요의 침공때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였다.
919년 요나라는 발해의 영토인 요동 지역을 공격하여 발해 주민을 약탈해가자,발해 또한 군사적 작전을 펼쳐 924년 요를 공격하여 장수실을 죽이고 거란인을 약탈하니 발해와 요는 이제 본격적인 전면 전만 남겨두었다.
무려,20년 가까이 전쟁을 한 것이다. 그 결과 발해는 요동 지역을 상실하였다.925년 12월 요의 황제 야율아보기는 "이른바 두 가지 일중 하나는 이미 끝냈지만 발해가 대대로 내려오는 원수로서 아직 복수를 하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안주할 수 있겠는가!" 라는 조서를 내리고 거란군과 기타 원정군을 이끌고 발해를 공격한다.첫 공격지는 부여성이었다.발해국이 강성할 시에는 거란에 대비하여 많은 군대가 주둔하였지만,요나라가 공격할 시에는 성의 수비가 약화된 상태였다.그리고 주요 부대는 서쪽의 장령부에서 요의 침공을 대비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부여성은 3일 동안 요의 대군을 맞아 고립된 성을 사수하지만,끝내 요의 대군에 버티지 못하고 성주 이하 전체 병사들은 전사하고 성은함락되었다. 부여성의 함락은 곧 발해국의 멸망과 연결되었다.요의 대군은 부여성에서 수도 상경용천부까지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았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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