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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전한초기의 억상정책

저작시기 1997.01 |등록일 2006.02.2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2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Ⅰ. 머리말

Ⅱ. 抑商政策의 배경
1. 理念的 배경
2. 漢代 商業의 발전 상황

Ⅲ. 文,景帝代까지의 重農抑商政策

Ⅳ. 武帝期의 抑商政策
1. 鹽鐵專賣와 均輸,平準
2. 算緡,告民에 의한 상인 탄압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秦․漢帝國의 皇帝支配體制가 자립적 小農民을 기초로 형성되었다고 보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帝國은 기본적으로 小農民들로부터 租의 수취와 力役의 징발, 그리고 人頭稅의 수취를 통해 생산인구를 파악하고, 국가의 재정 수입을 충당하였다. 그러나 漢의 재통일 이후 사회경제적 상황이 안정되면서 豪族이 등장하여 皇帝權力과 小農民 사이의 변수로 작용하였다는 것도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豪族은 기본적으로 대토지소유자로써 몰락한 농민층을 흡수하여 私的으로 그들을 지배했다. 따라서 皇帝權力의 측면에서 본다면 豪族은 분명 帝國의 이념에 모순되는 존재였다.
그런데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본다면 豪族 세력은 상인계층이 그들의 자본을 이용하여 대토지 소유자로 轉化하면서 발전하였다. 따라서 권력의 기반을 小農民에 둔 당시의 국가 입장에서 볼 때, 상인은 국가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상인은 농민이 생산한 富를 흡수하여 농민의 경제적 안정을 위협하며, 또 그 이동성으로 인해 통제하기도 쉽지 않은 존재로 인식되었다.

상업으로 인한 私富의 지나친 확대는 결국 국가의 기반을 이루는 小農民層의 몰락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 입장에서는 상업을 억제하는 정책을 줄곧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漢 초부터 상인에 대한 차별책을 시행하였고, 入粟拜爵策, 鹽鐵專賣, 算緡․告民令 등의 정책을 사용하여 상업을 억누르려는 노력을 계속 하였다. 그러나 戰國時代 이래로 중국에서는 이미 상업이 발전하여왔으며, 상업에 의한 이익이 농업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훨씬 컸기 때문에, 상인에 대한 억압책이 얼마나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처음부터 미지수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상인과는 대조적으로 농민들은 국가의 농업 장려책에도 불구하고 각종의 세금과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빈곤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었다. 특히 상인들이 그들의 자본을 이용하여 토지를 사들이고 大土地所有者로 轉化하면서는 기반을 잃은 많은 小農民들이 小作農이 되어야 했다. 이렇게 해서 국가의 齊民支配 이념은 점점 현실과 괴리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결국 豪族이 국가와 일반 인민 사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後漢 사회는 돌연 탄생한 것이 아니라 前漢 사회의 모순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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