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한국고전문학]삼국유사

저작시기 2002.11 | 등록일 2006.02.13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대학교 때 `고전소설론` 수업을 들으며 매주 고전 소설 한 편씩 과제를 해서 냈었는데 그 중에 하나입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가장 먼저 공부하게 되어서 작성한 자료입니다. <삼국유사>를 공부하시는 분께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목차

<민담>
1. 도화녀(挑花女), 비형랑(鼻荊郞)
2. 거타지(居陁知)
3. 김제상(金堤上)
4. 지은(知恩)

<불교적 민담>
5. 사복(蛇福)
6. 조신(調信)
7. 원효(元曉)
8. 의상(義相)
9. 원광(圓光)
10. 혜공(惠空)

본문내용

<민담>
1. 도화녀(挑花女), 비형랑(鼻荊郞)
제 25대 사륜왕(시호 : 진지대왕)이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지 4년 만에 정사가 어지러워지고 음란하게 되므로 나라 사람들이 왕을 폐위시켰다. 사륜왕이 왕위에 있을 때, 사향부 서인의 딸이 얼굴이 예뻐서 도화랑이라는 별명이 있다는 말을 듣고 궁중으로 불러 간음하려고 하였다. 이에 여자가 말하기를,(하략)
2. 거타지(居陁知)
51대 진성여왕이 왕위에 오른지 몇 해 되던 해의 일이다. 왕의 아들인 아찬 양패는 사명을 받들어 당에 가려 할 때 백제의 해적들이 진도에서 집결했다는 말을 듣고 활 쏘는 군사 50명을 뽑아 따라가게 되었다. 배가 곡도에 닿았을 때 풍랑이 크게 일어 십여 일을 그곳에서 묵게 되었다. 이에 제사를 지내니 못에서 어떤 노인이 나타나 활 잘 쏘는 사람 하나만 이 섬에 두고 떠나면 바람을 자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누구를 남게 할까 하다가 (하략)
3. 김제상(金堤上)
제 17대 나밀왕이 즉위한 36년 경인에 왜왕에게 성심을 표하는 의미로 셋째 아들 미해를 볼모로 보냈으나 왜왕이 돌려보내지 않았다. 또한 그 후 눌지왕이 즉위한지 3년에는 고구려 장수왕에게 보해를 볼모로 보냈으나 고구려 또한 보내지 않았다. 이에 눌지왕은 심히 슬퍼하고 근심하였다. 어떻게 하면 이 둘을 찾아올 수 있을까 하고 신통한 계략을 낼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이에 백관들이 제상을 추천하고 제상은 고구려로 들어가 보해를 데려왔다.(하략)
4. 지은(知恩)
지은(知恩)은 한기부(漢岐部) 백성 연권의 딸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어머니를 모셨다. 나이가 32세가 되어도 시집을 가지 않고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하여 곁을 떠나지 않았다. 봉양할 거리가 없으면 품팔이도 하고 구걸도 하여 밥을 구해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날이 계속되자 피곤함을 이기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부잣집에 자청하여 몸을 팔아 종이 되고 쌀 10여석을 얻었다.(하략)
<불교적 민담>
5. 사복(蛇福)
경사(京師:서울. 당시 경주를 뜻함)의 만선북리(萬善北里)에 과부가 남편 없이 아이를 낳았다. 12세가 되도록 말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하므로 이름을 사동이라 했다.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원효대사가 고선사(高仙寺)에 머물다가 사복을 보고 맞아서 예를 하니 사복이 답례는 않으며 가로되 “그대와 내가 옛날 경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이제 죽었으니 같이 장사지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한다.(하략)
6. 조신(調信)
옛날 신라가 서울이었을 때, 세규사(世逵寺:지금의 흥교사(興敎寺)) 농장이 명주(溟洲) 날리군(捺李郡)에 있었다. 본사에서 조신이라는 중을 농장 감독으로 보내었는데 조신이 농장에 와서 태수 김흔공의 딸을 깊이 사모하여 누차 낙산사 대비관음 앞에 나아가서 그 여자와 인연을 맺어 주기를 가만히 빌었다. 그러나 수년 동안에 그 여자는 벌써 배필을 갖게 되었다.(하략)

참고 자료

없음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