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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경주 문화유산 답사기 - 남산

저작시기 2006.02 | 등록일 2006.02.11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경주 문화유산 중 남산을 종주하고 쓴 답사기 입니다.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남산을 다녀온뒤의 느낌을 함께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1. 남산에 대한 개관

2. 삼릉골
경애왕릉 삼릉
마애관음보살상 마애선각육존불상
선각여래좌상 석불좌상

3. 상선암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
상사바위

4. 금오산 정상

5. 용장골
용장사지 삼층석탑 마애여래좌상
용장사지 석불좌상

6. 남산동 삼층쌍탑

7. 서출지

8. 통일전

9. 답사를 마치면서

본문내용

1. 남산에 대한 개관
경주 남산은 서라벌 남쪽에 솟은 해발 468m의 금오산과 494m의 고위산에서 뻗어 내린 약 40여개의 등성이와 골짜기를 말하며 약 180여개의 봉우리가 있다.
아주 오래전 서라벌이라 불리던 경주는 맑은 시내가 흐르는 푸른 벌판이었다. 맑은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한 처녀가 이 평화로운 땅을 찾은 두 신을 보았다.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한 남신과 부드럽고 고운 얼굴의 여신이었다. 너무 놀란 처녀는 “저기 산 같은 사람 봐라!” 해야 할 것을 “ 산 봐라!” 하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비명에 놀란 두 신이 발길을 멈추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다시는 발을 옮길 수가 없었다. 처녀의 외침으로 두 신이 산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여신은 남산 서쪽에 아담하게 솟아오른 낭산이 되었고, 남신은 억센 바위의 장엄한 남산이 되었다.
경주의 산 치고 신라의 유적이 없는 산이 있을까마는 그 으뜸의 자리에는 남산이 서있다. 남산을 불국토로 여긴 신라인들이 천년을 두고 보듬었으니 남산 자체가 그대로 절이며 신앙인 셈이다.
사실 경주를 다녀가는 많은 사람들이 시내와 보문단지 등의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보고 가지만 남산에 있는 수많은 역사적 유물, 유적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에 오래전 올라보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다시금 남산 종주길에 나섰다. 부산에서 한시간 남짓 걸려 닿은 경주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우두커니 서있는 남산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 높지는 않아도 장엄하게 늘어서있는 남산을 보면서 무언가 모를 설레임을 느꼈다.
터미널에 내린 시각은 오전 10시. 파란 하늘만큼이나 쾌청한 날씨여서 산에 오르기는 정말 좋을 것 같았다. 터미널 앞에서 버스를 타고 15분정도 갔을까? 삼릉골 앞에 내렸다. 이제 나의 두 번째 남산 등반이 시작된다.


2. 삼릉골
경애왕릉 삼릉 석불좌상 마애관음보살상 마애선각육존불상 선각여래좌상
삼릉골 앞으로 많은 나무들이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처럼 우뚝 서있다. 천년을 그렇게 나라를 지키듯 남산을 지켜온 것일까. 삼릉골 입구 나지막한 곳에는 옛 신라의 왕릉이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경애왕릉(아래 좌측사진)과 왼쪽편에 삼릉(아래 우측사진)이 있다. 경애왕은 신라 55대 왕으로 신라 말의 혼란기에 즉위하였는데, 왕건·견훤 등의 강대한 세력에 눌려 국왕다운 위엄을 떨치지 못하고, 포석정에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자살했다고 한다. 어쩌면 비운의 임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의 죽음처럼 지금 경애왕릉은 홀로 쓸쓸함만 가득히 드리우고 있었다.

참고 자료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 경주>, 돌베개, 1999
부산대 역사교육과, <학년답사 자료집- 경주>, 1999
경주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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