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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영화 Tango와 아름다운청년 전태일을 통해서본 아르헨티나와 한국의 민족성, 사회성 비교

저작시기 2004.04 | 등록일 2006.02.07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문학과 음악이라는 교양수업 발표자료로 사용했었습니다.

목차

(outline)
1. 1976년 이후의 아르헨티나 군부통치
2. 아르헨티나의 탱고(Tango)
3. 영화 <탱고> 줄거리
4. 한국의 1970년대 - 유신정권시대
5. 전태일 분신자살사건 (=영화<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줄거리)
6. 영화시청
7. 두 작품의 비교분석

본문내용

1. 1976년 이후의 아르헨티나 군부통치

1943년 6월 연합장교단(Grupo de Oficiales Unidos)의 멤버였던 페론(Juan Domingo Peron)은 점차 그룹의 지도자로 부상하여 1946년 54%의 지지를 얻어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 계층과 밀접한 유대를 이루고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정치, 경제적 성공을 거두어 1951년 재집권에 성공하나, 1955년 정권은 붕괴된다. 이때 수립된 군사정권은 페론주의와 페론당에 대한 강력한 억압에 나선다. 하지만 연속된 정책 실패에 직면한 친 군부 측 정권들은 다시 페론주의자들에게 밀려 1973년 9월의 선거에서는 페론이 재집권에 성공한다.
그러나 1974년 페론이 사망하자 1976년 3월 비델라(Rafael Videla) 장군을 주축으로 하는 군부는 노동자 총 연맹의 일부 그룹에 의지하던 이사벨 페론의 정권을 붕괴시킨다. 쿠데타는 좌익 및 노동자계층의 파업과 테러를 야기했고, 군부는 이에 대응하여 대대적인 게릴라 소탕 작전에 돌입하여 수많은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4. 한국의 1970년대 - 유신정권시대

<박정희유신정권수립>
유신체제의 성립과정을 살펴보면,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그 후 제3공화국 헌법에 따른 선거에 승리함으로써 그의 정권을 합법화시켰다. 그의 임기는 1971년까지였으나 3선 개헌으로 1975년까지로 연장되었고 4선 개헌이나 5선 개헌을 하지 않는 한 더 이상 연장될 수 없었다.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1971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개헌선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통령 임기연장을 위한 더 이상의 개헌을 불가능했고 공화당의 간부들도 박 대통령이 1975년에는 물러나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제3공화국의 헌정질서 하에서는 더 이상 대통령을 할 수 없었다. 그가 대통령을 더 할 수 있는 길은 제3공화국 헌정질서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었고 1972년 10월 유신이라는 길을 택하게 되었다. 유신체제는 1972년 12월 27일 공식 출범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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