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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유산]북비문

저작시기 2005.10 | 등록일 2006.01.30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22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한국문화유산 팀보고서

목차

1.조선후기의 사회생활

2.사도세자와 당쟁, 그리고 엇갈린 부정(父情)

3.북비의 의의

본문내용

1.조선후기의 사회생활

조선이 건국되고 양대 전란을 맞이하면서 조선은 대외적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먼저 대외적으로는 주변 세력이 재편되면서, 일본의 전국 시대가 막을 내리고 무로마치에 이어 도쿠카와 막부가 들어서게 되고, 중국 역시 명이 무너지고 후금으로 일어선 청이 중원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대외적 분위기 아래서 조선은 단 한번, 신하의 예를 갖추는 위치에서 동등한 위치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나, 아쉽게도 내부의 반발로 이루지 못하고 호란을 겪으며 다시 한번 사대를 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내부적으론 양대 전란을 겪으며 토지가 황폐화되고, 많은 인구감소도 일어났으나, 천천히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청의 볼모 생활을 하다 귀국한 효종은 강력한 북벌정책을 추진하나 이미 청은 예전의 초창기의 모습이 아닌 중국대륙의 주인으로서 면모를 갖춘 뒤였고, 그러한 노력은 꿈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이러한 모습들 속에서 조선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근대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왕조는 17세기에 이르러 지배체제가 동요되면서 관료체제가 문란해졌고, 자연재해가 빈발하면서 농촌사회가 황폐화되어 가고 있었다. 위정자들은 지배체제의 모순을 타개하기 위해 통치질서를 개편하고 수취제도를 개혁해 보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었고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러한 모습들 속에서 지배층의 억압과 횡포로 인해 대다수의 농민들은 농촌에서 이탈해 임노동자나 유랑민 등이 되기도 했고, 일부 농민들은 기존의 가치질서와 가치관을 거부하기에 이른 일부농민들은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농민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1) 경제적 변화

경제부분에 대해서도 살펴보자면, 임진왜란 직전 전국의 토지 결 수는 약 150만 결이었는데, 직후에는 30여만결로 크게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지주전호제는 한층 강화되어 농민들의 생활이 크게 궁핍해져갔고, 이러한 민중들의 부담경감과 아울러 조세수입확대를 위해 토지조사사업이 이뤄지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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