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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사기 고조본기 해석

저작시기 2005.12 |등록일 2006.01.2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3페이지 | 가격 2,200원

소개글

동양사 강독 시간에 수업을 통해 배웠던 내용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고조본기 부분의 본문입니다.
음과 해석을 모두 달았습니다.
음이 달려 있으니 옥편 찾기도 쉽고 번역문이 본문 아래 같이 나와 있으니 번역문을 맞추어 가며 해석하는데 용이할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목차

史記卷八 - 高祖本紀第八
008/0341부터 008/0382-0383까지

본문내용

項羽解而東歸. 漢王欲引而西歸, 用留侯·陳平計, 乃進兵追項羽, 至陽夏南止軍, 與齊王信·建成侯彭越期會而擊楚軍. 至固陵, 不會. 楚擊漢軍, 大破之. 漢王復入壁, 深塹而守之. 用張良計, 於是韓信·彭越皆往. 及劉賈入楚地, 圍壽春, 漢王敗固陵, 乃使使者召大司馬周殷擧九江兵而迎(之)武王, 行屠城父, 隨(何)劉賈·齊梁諸侯皆大會垓下. 立武王布爲淮南王.
항우해이동귀. 한왕욕인이서귀, 용류후·진평계, 내진병추항우, 지양하남지군, 여제왕신·건성후팽월기회이격초군. 지고릉, 부회. 초격한군, 대파지. 한왕복입벽, 심참이수지. 용장량계, 어시한신·팽월개왕. 급류가입초지, 위수춘, 한왕패고능, 내사사자소대사마주은거구강병이영(지)무왕, 행도성보, 수(하)류가·제량제후개대회해하. 립무왕포위회남왕.
항우는 (군사를) 풀어서 동으로 돌아갔다. 한왕은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돌아가는데 유후와 진평의 계략을 써서 이에 병사를 보내 항우를 쫓아가 양하의 남쪽에 이르러 군대를 멈추고, 제왕 신·건성후 팽월이 모여 초군을 공격하고자 하였다. 고릉에 이르러 모이지 못했다. 초는 한군을 공격하여 이를 크게 깨트렸다. 한왕은 누벽에 들어가 참호를 깊게 하고 그것을 지켰다. 장량의 계략을 쓰자 곧 한신과 팽월이 모두 갔다. 류가가 초 땅에 들어감에 미쳐서 수춘을 에워싸니 한왕은 고릉에서 패하였고 이에 사자로 하여금 대사마 주은을 불러 구강의 병사를 들어 무왕을 맞이하였으며 성보를 무찌르도록 하니 수하·류가·제량의 제후가 모두 해하에 크게 모였다. 무왕 포를 세워 회남왕으로 삼았다.

正月, 諸侯及將相相與共請尊漢王爲皇帝. 漢王曰 : “吾聞帝賢者有也, 空言虛語, 非所守也, 吾不敢當帝位.” 群臣皆曰 : “大王起微細, 誅暴逆, 平定四海, 有功者輒裂地而封爲王侯. 大王不尊號, 皆疑不信. 臣等以死守之.” 漢王三讓, 不得已, 曰 : “諸君必以爲便, 便國家.” 甲午, 乃卽皇帝位氾水之陽.
정월, 제후급장상상여공청존한왕위황제. 한왕왈 : “오문제현자유야, 공언허어, 비소수야, 오불감당제위.” 군신개왈 : “대왕기미세, 주폭역, 평정사해, 유공자첩렬지이봉위왕후. 대왕부존호, 개의부신. 신등이사수지.” 한왕삼양, 부득이, 왈 : “제군필이위변, 변국가.” 갑오, 내즉황제위범수지양.
정월, 제후와 장군·재상은(제후는 장군·재상에 미치어) 서로 더불어 한왕을 높여 황제로 부르기를 청하였다. 한왕이 말하기를 “내가 듣기로 황제는 현명한 자만 갖는 것이고, 빈말로는 지킬 바가 아니다. 나는 제위를 감히 당할 수 없다.” 군신 모두 말하기를 “대왕은 미천한 신분에서 일어나 폭도·역도를 베고 사해를 평정하고 공이 있는 자에게 땅을 갈라 왕후로 봉하였습니다. 대왕께서 존호를 하지 않으면 모두 의심하고 불신할 것입니다. 신들은 죽음으로써 그것을 지키겠습니다.” 한왕은 세 번 사양했으나 부득이 말하기를 “제군들이 반드시 편리하다고 여기니 국가도 편리할 것이다.” 갑오년, 이에 곧 범수의 양에서 황제에 올랐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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